
무화과나무에서 배울 교훈 (막13:28-37; 눅21:29-33; 17:26-30, 34-36; 12:35-48)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종말은 분명히 있지만 종말의 때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삼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묵상하며 사는 것 만큼 삶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사는 방법이 없지요. 하지만 또 죽음에 너무 사로잡혀서 삶을 무너뜨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종말은 자칫 시험에 들게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일상의 바쁜 것에 쫓겨서 하루 하루 사는게 좋아서 종말을 잊어버리는 것 또한 위험합니다. 그래서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쪽에 쏠리지 않고 사는 것이 신앙의 믿음과 능력입니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 아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늦봄에 잎사귀가 나는데, 그 잎이 연해지면 아~ 여름이 왔구나 하고 압니다. 이렇게 주위를 살펴보면 늘 때를 알 수 있는 조짐이 보입니다. 하지만 자기애에 같혀버리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없어집니다. 때를 따라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주위를 잘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그러면 그 때를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23장부터 종말을 이야기 하실 때, 예루살렘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나누어 이야기 하시면서 동시에 겹쳐서 함께이야기 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장을 읽을 때 분별이 조금 필요합니다. 앞서 무화과나무 비유는 예루살렘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함께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34절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실제로 멸망을 경험했습니다. 성전도 다 무너지고 백성들도 죽음을 맞게 됐고, 학살당하고 부모가 자녀의 인육을 먹는 사건까지도 일어났지요.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예루살렘에 관한 종말은 이미 전에 예언을 하셨어요. 이 절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때를 왜 모르시겠어요?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일체성, 의존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말은 독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회 문화적인 관습을 이해한다면 이 말의 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 관습상, 정식 결혼 날짜는 아버지가 갑자기 불러서 날짜를 정해줍니다. 아들은 빨리 신부를 데리고 오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에 결혼을 위해 성실하게 신부와 살 집도 짓고 준비를 합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날짜를 정해주면 아들이 신부를 데리러 가면서 결혼 예식이 시작됩니다.
그런 아버지가 날짜를 정해주기까지 아들을 삶을 다시 볼까요? 아버지가 불러주시기 전까지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재림하실 때는 어떤 모습으로 오시느냐?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처럼 살지 않았어요.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은 "저 사람이 제정신인가?" "미쳤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손가락질을 받았지요. 그들은 정작 홍수가 날때까지는 방주의 의미나 크기를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될 때 방주를 준비한 노아와 8명의 가족만 살아남았지요. 이렇듯 "이 아침 시간에 운동하거나 책이라도 하나 더 읽지, 마스크 쓰고 앉아서 웬 예배?" 이러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욕할지도 몰라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크게 지으라고 하시는거냐? 아니요!! 우리 자체가 교회가 되고, 방주가 되어 종말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을 준비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뒤이어 나옵니다.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둘 다 일상에 있습니다. 한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을 위해 직업을 바꿔야 합니까?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어떤 일을 하던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일을 악한 동기로 하느냐 선한 동기로 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부활인가 사망의 부활인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각종 직업이 있어요. 근데 그 일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데려감을 당할 수도 있고 버려짐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이제 도둑의 비유를 드십니다. 종말이 오는 것은 집에 도둑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이 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합니까? 외출할 때 집 열쇠 단단히 잠그고 나가지요?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 아니겠어요? 이렇게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은 동원하는데 정작 우리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우린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거지요.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될까요? 깨어있으래요. 깨어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졸아서 안된다는 거에요. 단순히 잠을 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상태의 삶을 사는지 정신줄 놓지 말고 자각하며 살으라는 것입니다.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 준비된 삶의 모습 중에 복음을 맡은 자의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하느냐? 충성된 종처럼 살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지기로 산다면 주인께서 맡겨놓은 양식을 그 주인의 식솔들에게 잘 나누어 먹이는 것이 우리 일이지요! 우리에게 복음과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책임을 주셨으니 그 책임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영혼을 맡기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잘 나누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먼저 진리를 알게 하셨고, 그 진리를 나누기를 원하세요. 영혼들이 건강하게 되도록 돕는 것, 같이 예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책임, 책무입니다.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 늘 주인의 양식을 잘 고루고루 대접하는데, 악한 종은 주인이 나가는 순간 그 집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자기 친구 불러다가 술파티하고 주인의 것을 먹고 마신단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 종을 가만히 두겠냐는 것이죠.
나에게 맡겨진 사람이 누군지 잘 살펴보세요. 지나가다가 풀이 죽은 동료가 있으면 어깨 한번 두들겨 주고 이웃을 배려하고 말 한마디를 사람 낙심시키고 상처주는데 쓰지 말고 위로하는데 쓰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입니다. 작은 일 가운데 우리 영혼의 갈림길이 있으니 잘 분별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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