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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6:25-34 우리는 왜 염려하나

by jiroky 2021. 3. 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에 놓으시고 난 후,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을 마지막에 두시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존을 위해 걱정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내 첫 번째가 된다면, 혹은 재물이 내 첫번째가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씀하여 주십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왜 염려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안보이고, 보이는 물질에 관심을 쏟으니 나타난 것이 "염려함"입니다. 그럼 왜 염려합니까?

첫째는 무지함 때문에 그래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어떤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염려할 이유가 없죠. 어차피 바꿀 수 없으니까요.

두번째는 욕심 때문에 염려합니다. 어떤 결과에 대한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루워지지 않을까봐 염려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결국은 교만해서 그런 것입니다. 미래는 내 영역이 아닌데 마치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무지나 염려나 교만이 불신에서 뻣어나간 가지들입니다.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 비유를 드십니다. 인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새들도 걱정 없이 사는데 인간이 걱정을 다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창조물보다 인간을 가장 가치있게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가치있는 인간보다도 못한 새들도 그렇게 사는데, 인간이 염려하고 산다면 결국 새만도 못한 인간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냐고 물으십니다.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저렇게 예쁜 백합꽃도 꽃 스스로가 예뻐진 것이냐? 아니다. 저 꽃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다 하나님이 저렇게 예쁘게 꽃피우게 만드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솔로몬은 지금까지 인류 중에서 가장 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좋고 비싼 옷을 입었어도 들에 핀 백합화가 더 아릅다는 것입니다. 왜? 백합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걱정없이 살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결국 자기 죄 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고 염려하면서 사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과 염려는 되려 너의 믿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살펴볼까요?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과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풍랑에 두려워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풍랑 가운데 물 위로 걸어가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자기도 걷고 싶다고 해서 걷다가 풍랑을 보고 두려워해서 물에 빠져 버립니다. 그를 건지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마 16: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먹을 떡을 안가져 왔다는 사실로 걱정하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 말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불신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에요. 예수를 믿는다고 따르는 우리에게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제 어떤 사람이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시는지 볼까요?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인이 병이 들어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다가 예수님의 소식을 알게 되서 예수님게 부탁합니다. 하지만 집 근처에 이르러서 이방인의 집에 랍비가 들어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씀만 하셔도 낫는다고 하니까 말씀만 해주세요! 그럼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귀신들린 딸 때문에 방법을 찾다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쫓아가서 애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방인들한테는 안 간다'라고 말씀 하시자, '내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좋으니 내 딸 좀 치료해 주십시요'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믿음은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믿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이 크면 내가 점점 더 커져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런 믿음은 되려 가질수록 이상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내가 교회도 잘 나가고, 기도도 잘하고, 말씀도 잘 읽고, 교회 일도 잘하고 하니까 하나님이랑 친하고 착각하고, 무슨 하나님 뒷빽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 결국 그 믿음은 변질되고 맙니다. 우상숭배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믿음이 큰 자가 아니라... 저 백부장과 저 여인이 믿음이 큰 자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보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뭔지를 잘 분별해야 해요!! 교회가 하라는 것은 다~ 하면서 정의와 공의를 져버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세상이 되려 강팍해지고 무자비해졌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뭘 했냐는 것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거는 구하지 말라고 하세요. 생존에 관한 것으로 기도할 이유가 없다고 하십니다. "새들도 꽃들도 안 구하는 것을 너희 인간이 구하고 있냐"라고 되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고 싶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제자가 되었다면 우리 기도의 범위가 달라져야 합니다. 나를 감옥에서 꺼내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이런 기도가 아니라 저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주세요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해주세요 이게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안바뀌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기도가 바뀌지 않으면 불자보다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보다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구하라. 곧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 하나님을 먼저 섬기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먼저는 "처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제자가 되었다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하나님이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가게 될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십일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최소한의10분의 1도 못 드리면서, 기도할 때는 '나를 드립니다. 나를 써주세요' 이런 말 하지 마세요!!

손에 쥐고 있으니까 불안하고, 그래서 더 꽉 쥐다보니까 더 불안하고... 그러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이 어쩌네 하나님의 사역이 어쩌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 결국 고통이나 불행도 하루벌이면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 그냥 생각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걱정에 관한 것은 내일 거, 내년 거 불려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오늘 하루 그렇게 열심히 살면 되는 겁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한 말씀만 매일 매일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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