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7:1-12 남을 비판하는 결과

by jiroky 2021. 3. 3.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할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죄를 치우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걱정이 있으면 믿음의 성장도 없습니다. 오늘 또 한가지,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비판을 받기 싫으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분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분별에서 한 단계 더 나가서 선과 악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우리 신앙은 한 순간에 멈춰버리고 맙니다.

왜 저 사람은 성경을 안가지고 다니나? 왜 저 사람은 기도를 안하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왜 우리가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끊임없이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판을 하면 반드시 그 동일한 비판을 나도 받게 됩니다. 나의 잣대로 남의 신앙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동일하게 나도 그 잣대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비판이 이성적이 활동이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적인 영역에서는 하나님이 기준이지 내 생각이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서로 비판하는 공동체 안에 오셔서 서로 사랑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중지해야 품어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행위를 멈추십시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들보는 서까래, 티는 톳밥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로 얼마나 비판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비난 거리가 내게도 있기 때문에 남을 비난하면서 자기 들보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할 때마다 생각하세요. 그 분노 거리가 나는 가지고 있지 않나?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사도 바울도 이야기합니다. 너가 비판하는 행동을 동일하게 너 자신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남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품으면 비난도 사라집니다. 티가 안보이게 됩니다. 이해하게 됩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잣대를 모두에게 동일하게 대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한 없이 봐주고 이해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댑니다.

몽둥이로 세상은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사람이 많아지면 피가 많아질 뿐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일 수록 정의를 내세우겠다고 몽둥이를 든 사람일 뿐이지, 정작 자기 안에 들보는 빼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 가치있는 것, 갚진 것을 귀한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치있고 갚진 것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사람을 분별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복음을 개, 돼지에게 주려고 하다가 상처를 받게 될까 염려하신다고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이 구절 참 좋아하지요? 이 구절만 엄청 암송하지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반복해서 말하고 있어요. 이 말의 참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네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구하라"

예수님 뜻에 합당한 것, 아버지의 계획에 합당한 것을 구하라는 것이지, 내 욕망대로 찾고 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주시고 언제 열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때에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것을 주시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때에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신앙생활 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뜻에 어긋한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뭐 단단히 병에 걸린 것이지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하게 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이 있는데 갑자기 내 생각과는 다른 기도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내 기도를 막으시고 그런 기도를 하시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지, 뭘 물질적인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남편[아내] 좀 바꿔주세요. 내 자식 좀 바꿔주세요. 기도하는 당신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자식, 너의 남편, 아내를 바꾸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바꾸고 싶다."

주님은 우리를 바꾸고 싶어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주실려고 하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내가 먼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것보다 큰 대접은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