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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17:1-13 해같이 빛나는 얼굴

by jiroky 2021. 4. 30.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들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모두 믿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이나 신비한 체험은 특별한 목적이 있고, 선택된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변화산 사건도 12제자가 아니라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에게만 보여주십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눅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도중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변화되셨다는 거예요. 결국 변화되신 것은 원형을 회복하신 거예요. 예수님 스스로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해 같이 빛나는 얼굴, 이것이 원래 주님의 모습인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지요. 또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우리도 어떻게 변화되는지 로마서와 고린서후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지요. 원래 이 모습이셨고,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가 다시 그 얼굴로 돌아가신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세 제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신 걸까요?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세 제자는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는 예수님을 봅니다. 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고, 두려운 나머지 베드로가 또 엉뚱한 말을 합니다.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한 거에요. 한마디로 넋이 나간 것이지요.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마3:17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리지요? 그 때 들린 음성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여 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런데 이 말은 모세를 통해서 이미 선포된 말씀입니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마태는 그 자리에 함께 없었으니까 누군가를 통해서 이 사건을 들었겠지요? 그리고 들으면서 순간 모세의 예언이 떠올랐을 겁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언제부터 작정하시고 준비하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 제자들이 너무 두려워하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 '산에서 내려올 때'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세 분을 모시고 거기서 살고 싶다는 충동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그 곳은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입니다. 이 말은 크고 놀라운 영적 체험은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은 더 큰 신앙으로 옮겨가는데 매우 소중한 경험이지만, 이 경험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억될 수는 있습니다.

영적 신비나 체험을 갈망한 나머지 계속해서 거기 머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더이상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고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했다. 성령충만했다 할 때 얼굴이 달라졌어요. 얼굴이 밝아졌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것은 이미 우리 안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분명히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향기를 전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예수님을 통해 신비한 영적 체험을 경험했을 때,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발길을 돌려서 다시 산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즉, 다시 세상 가운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의 자리로, 각자의 십자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자리를 걷기 위해서 우리가 아침마다 예배의 자리에 묵묵히 있는 것입니다.

⇒ 신비한 영적 체험은 앞으로 고난의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의 고통을 맞딱뜨리겠습니까?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신비한 영적 체험이 필요한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이런 체험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그 음성을 듣고 십자가를 지실 준비를 하시는 것입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되심을 비로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의 예언의 말씀을 질문합니다.

말라기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했는데 엘리야는 언제 왔습니까? 엘리야가 와서 무슨일을 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말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 엘리야가 이미 왔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미 세례 요한이 와서 엘리야의 역할을 다 했지만, 결국 그는 목이 잘려 죽는 순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끝까지 본인이 할 바를 다 했습니다. 감옥에서 메시아가 맞는지 잠시 시험에 들기도 했지만 그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신의 고난의 길은 예수님 자신이 겪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들어가고 죽었을 때 예수님은 그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셨어요.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고난을 각자가 겪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 고난에 왜 너는 동참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동일한 십자가를 진다고 해서 누구나 동일한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냥 머물러만 있는 인생이 아니라 어떤 고난의 길을 걸어가든지 짙은 어둠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에만 앉아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평안하고 즐겁지요! 그러나 우리는 거기 머물러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체험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주는 능력을 기억하며 세상 가운데로 걸어가는 축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우리가 겪어야할 환란과 고난이 어떤 것인지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체험은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려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어떤 고난이라고 해도 주님과 동행하는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합당한 영적 체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영척 체험에만 빠진다면 신비주의에 머물러 있어서 이단에 빠지기 쉬워요. 그러니 머물러 있지 말고, 세상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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