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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17:14-27 우리는 왜 안됩니까?

by jiroky 2021. 5. 1.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다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죽음과 부활을 다시 이르시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성전세를 내시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변화산 사건은 고난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변화산 사건 이후 내려 온 산 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 내려와보니까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이는 그대로고 아버지는 애가 탄 상태로 있다가 돌아오신 예수님께 하소연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사건이 좀 더 자세하게 나와있는데요.

막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일단 믿음이 없는 아버지를 꾸짖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뭐냐?' 이 아버지가 바로 깨닫고 '내가 믿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근데 예수님은 그 믿음 가지고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날 믿기는 믿죠. 믿으니까 예배에 나오겠죠? 근데 이 믿음으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진 이 믿음으로 나 하나도 변화하시키는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냐는 거지요. 이게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에요. 지금의 이 교회로는 안된다는 거에요.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 믿음이 왜 없겠어요? 있기는 있죠. 그러니 예수님 앞에 온거죠. 그런데 이 믿음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예요. 이 믿음 가지고는 악하고 패역한 세대를 이길 수 없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제자를 두명 씩 짝지어 보내실 때 권세를 주셨어요. 그런 능력을 주셨고 제자들이 체험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이 날 못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열두 제자 중에 셋만 쏙 빼서 어딘가 가니까 다른 제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았을까요? 귀신을 쫓는 능력을 보여야 하는데 속은 편치 않아요. 어쩌면 그들 마음 가운데 믿음은 사라지고 불평, 불만만 남았겠지요.

행19:14-16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게 오늘날 우리 믿음의 현실이에요. 우리의 믿음이 생명력이 있는지 흉내만 내는지는 귀신들이 더 잘 알아요. 과연 지금 내 이 믿음으로 이 시대를 이기겠냐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는 얼마나 변했고, 우리 가정은? 우리 주변은 얼마나 변했냐는 거에요. 믿음이 없기는 아이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제자들도 마찬가지지요. 근데 그나마 아버지는 '나의 믿음 없음을 바꿔주십시오'라면서 태도를 바꿨어요.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 사단은 달래는게 아니에요! 꾸짖는 거에요! 꾸짖어 대적해서 내보내는 존재에요.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민망해진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에게 와서 묻습니다. "주님! 우리는 왜 안됩니까?"

우리는 기도해도 왜 안됩니까? 우리는 교회를 다녀도 왜 안됩니까? 이게 지금 우리의 질문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쉽게 이야기하십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이야." 믿음이 없다가 아니에요. 믿음이 있긴 있는데 작다는 말이에요. 겨자씨보다도 작은 믿음이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겨자씨만한 믿음과 우리의 믿음은 도대체 뭐가 달라서 이렇게 우리는 늘 갈등 속에 있는 걸까요? 겨자씨는 생명력이 있어요. 생명이란 뭐에요? 그리스도의 생명이고 그리스도의 능력이지요. 흉내만 내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진짜 믿음을 요구하시는 거에요.

화려하고 멋진 어휘로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니에요. 단 한마디, 한구절이라도 생명이 담긴 기도여야지 입만 열면 술술나오는 목사들이나 장로들 기도가 뭐가 능력이 있겠어요?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믿음입니다. 성경도 좋고 QT도 좋고 다 좋은데 믿음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 모으고 성경공부부터 시작하셨나요? 아니에요!! 주님은 능력을 주길 원하셨어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구하면 됩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처럼...

믿음은 상식을 깨는 틀이고 이성을 뛰어넘는 틀입니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한계를 정해놓고 사는지 모릅니다. 믿음은 이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21 (없음)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첫번째 수난 예고에서 베드로가 혼줄이났지요. 그리고 두번째 수난 예고를 하시는데, 제자들은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근심했대요. 이건 뭘 의미해요? 여전히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당시에는 2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성전세를 걷었어요. 어느날 성전세를 걷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와서, 왜 너네는 성전세를 안내냐?고 물어요. 베드로는 "우리도 낸다" 말하고는 주님에게로 갔어요.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에요. 주인이 왜 세금을 내겠어요?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을 뿐이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어요. 이 땅에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셨단 말이에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구하는 그들을 위해서 성전세를 내십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으로 정체성이 바뀌었지만, 세상이 실족하지 않도록 사회적 의무나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세상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의가 넘칩니까? 우리는 불평, 불만하려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악의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믿음으로 이성과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만한 믿음이 없습니까? 괜찮아요. 주님께서는 이미 진정한 믿음이 없음을 아시니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함을 세상에 보여주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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