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우리의 문제는 뭔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내가 필요한게 뭔지도 모르게 돼요.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앎에 근거한 사고와 판단을 하는 삶입니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든든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삼손이 이 가정에 태어나지만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몰라요. 오늘 그들의 영적 무지를 오늘 보게 됩니다.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 지금도 중동지역은 손님을 환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대접하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았다면 음식대접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마노아는 그저 선지자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해요. 염소를 잡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마음입니다.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 밥 먹자고 하니까 식사 대접이 중요한게 아니라 번제를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을 묻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름을 묻고 대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서로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 하나 물었을 뿐인데 이름을 묻고 대답하는 것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의무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쉽사리 누구의 이름을 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이름을 안다는 게 당시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묻자 대답해주셨지요. 오늘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기묘자란 '이해할 수 없다', '놀랍다'라는 뜻입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오실 메시아에 관한 설명에 기묘자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마노아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묘자라고 부르는 거에요. 그 분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분이니까요.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 그래서 마노아가 번제를 드리려고 하니까 이적이 일어났어요. 제단에 불이 임했어요. 우리가 성경 곳곳에서 불로 임하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불꽃 속에서 올라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비로소 여호와의 메신저임을 그들은 깨닫습니다.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 여호와를 본자는 다 죽는다는 말을 그들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게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마노아에게 그의 아내가 참 현명하게 대답합니다. 우리를 죽이실 거라면 오셔서 아이를 주시겠다고 말하시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이죠.
→ 마노아는 아이를 주시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 세세히 알려주길 원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세세한 규칙을 알려주시길 원해요. 그래서 구약적 관점의 신앙은 규칙과 시행 세칙과 가이드에 관심이 많아요. 반면 신약적인 관점의 신앙은 원리, 원칙, 마음 중심의 동기를 중요시합니다. 이게 구약과 신약을 가르는 중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구약점 관점 신앙이라면 사사건건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좋아해요. 물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모든 답을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최소의 규칙을 알려주실 뿐입니다. 삼손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물었을 때도 그저 나실인으로 키우라고만 하셨잖아요.
→ 최소한의 제약을 통해서 큰 자유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규칙과 율법에 관심을 두게 되고, 율법에 관심을 두면 신앙은 점점 자유를 잃어가고 묶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저 그분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는 최소 규칙만 주실 뿐, 크나큰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에 주목하지만 그 분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각자 신앙의 특성이 다른데, 이 많은 율법의 계명을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 주셨어요. 사랑만 하면 되요.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 하나님께서 약속한 믿음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받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세상의 복과는 다른 신령한 복입니다. 보호하심, 인도하심, 동행하심 이게 복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 인기, 명예... 이런 소유의 복이 아니라 관계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복을 확인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주십니다.
→ 삼손은 하나님의 복으로 자라나고 하나님의 영이 그의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여가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움직이는 우리, 그리고 다음 세대가 되도록 기도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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