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23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믿음의 사람은 언약적 백성이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미래와 현재가 연결되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한다. 그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 멸명할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과 멸망을 앞두고 있는 유다 집에 대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다. 철저히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이 성취될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곧 우리의 사건이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된다.
15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 회복된다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메시아의 오심을 의미한다. 성경의 처음 시작은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과실을 먹는 일이다. 그들이 악에 눈을 뜨게 되면 얼마나 악한 세상이 되는지 보여 준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그것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6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여호와는 우리의 의'이라는 이름을 얻는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이라는 이름을 얻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의을 얻고 있나?
17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선한 말이 성취될 때 오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7절 : 정치적 회복
18절 : 종교적 회복
정치적 질서와 종교적 질서가 함께 회복됨을 의미한다. 그 회복의 기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사랑이 없는 정의와 공의는 폭력이다.
19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셨는데 이 언약을 누가 파기하겠느냐?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낮과 밤을 뒤바꿀 수 있냐? 너네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내 언약도 깨뜨릴 수 있을거다. 즉. 절대 새 언약은 깨뜨릴 수 없음을 확정하고 계시다.
22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 레위사람 제사장 뿐이 아니라 새 언약, 새 약속으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제사장으로 세워져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23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 다시 심판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택하셨지만, 앗수르와 바벨론에 짓밟히게 될 모습이 바로 눈 앞에 와 있다.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 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파멸의 예언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 하나님께서 이미 천지의 법칙을 정하셨고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택하신 민족을 통해 끊임없이 일을 하실 것이다. 언약적 성취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긍휼함, 불쌍함 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해세드. 언약적 사랑에 그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 반복된 모습으로 그 약속의 성취를 말씀하고 계시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와 공의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은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가? 진정한 회복은 예수님께서 오셔야만이 회복될 수 있다. 그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기초되어야 하고, 십자가에 그 기 반을 두고 있다. 왜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길 갈망합니까? 바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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