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당시는 로마를 지탱하는 부류는 노예계층이었다. 그들이 무슨 힘이 있었겠나? 그래서 그들은 더욱 신앙을 지켰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진게 많으면 못놓는다... 못내려간다. 내려놓은척하는 거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못믿는다. 자기 힘으로는 못믿는다. 믿는척하는 거지... 이 장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강하게 권면할 때 베드로는 말을 시작할 때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 거류민 - 시민권이 없이 거주하는 사람
· 나그네 - 그냥 잠깐 왔다 가는 사람.
이 둘의 특징은 기득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뭐하나 자기를 내세울게 없다는 거죠.
⇒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순전히 육체의 정욕만 제어하는 사람을 금욕주의자라고 하는데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니에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는 이유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육체를 절제하라고 하는 겁니다.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선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은 어차피 세상에서 비방받는 존재에요.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렇게 비방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의 선한 삶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적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악한 생각을 하는 순간, 악의 편에 서게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네는 선만 행해라. 악한 것은 내가 할께." 친히 주님께서 악하고 더러운 역할을 대신 맡으시겠다고 하신다. 주님께서 더러운 일은 다 맡으셨다. 수치를 당하셨고, 피도 흘리고, 찔리기도 하셨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밖에 수 없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 당시 성도의 주류는 노예나 종들이었다. 그래서 종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윗 권위를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결국 모든 권위, 권력은 무조건 하나님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면 부당한 권력에 어떻게 순종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상관없이 그 부당한 권력도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것이라는 거다. 분명한 것은 복음은 권력이 될 수 없다. 복음은 정확히 권력과 대립적인 입장에 서 있다.
⇒ 복음대로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억울하게 죽는거다. 근데 우리가 그렇게 안사니까 결국 종교나부랭이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시대 교회가 어디에 있나? 건물만 있지... 교회가 어디에 있나?? 가짜가 많아서 문제가 아니다. 진짜가 없어서 문제다.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 윗사람이 유식해보이고 똑똑해보여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모르는데 모든 유식이 있으며 하나님을 모르는데 무슨 지혜가 있겠냐는 거지요 부당함을 겪으면서도 부당함에 대항하지 않는 것으로 그들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자유를 하나님의 종처럼 누리라는 거에요. 요즘 기득권을 포장하는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아니요!! 종은 비천한 사람입니다. 낮은 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 공경하고 존대하라 결국은 같은 의미이에요. 뭇사람이나 왕이나 모두 공경하고 존대하라는 거에요. 이 사람 앞에서는 이 얼굴 저 사람 앞에서는 저 얼굴... 이 아니라 누구의 앞에서건 같은 얼굴로 대하라는 거죠.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 사환들은 종 중에서도 몸좀을 말해요. 그들에게 주인을 따지거나 가리지 말고 동일하게 대하라고 말하고 있네요.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이 절에서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원어에는 '은혜롭다'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어요. 고난을 참고 인내를 하면 은혜가 부어진다는 거에요. 은혜가 없나요? 고난이 없어서 그래요. 고난을 피해다녀서 그래요. 축복이 은혜가 아닙니다. 고난 중에 은혜가 오는 거에요.
⇒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고난과 슬픔을 참아내면 이게 은혜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했는데 고난을 겪을 때...은혜가 부어지는 거에요.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 때 은혜는 부어지지 않아요.
맞아요! 이게 말은 쉽지... 실제 행동은 어려워요. 그래서 복음은 제정신 갖고는 못사는 거에요. 그래서 술에 취해 사는 사람이 있듯 성령에 취해 살라는 거에요.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12제자를 부르시는데 사람을 낚으래요. 뭘로? 십자가로 낚으래요. 고난을 겪고, 슬픈 일을 참는 십자가로 낚으래요. 그 길을 알고 가야죠. 그 길을 모르고 가는 사람 많아요. 그리스도인도 아닌데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구나~'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는 거에요. "성령을 부어주세요!!" 여러분이나 나나 아직 미그리스도인입니다.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베드로가 인용하고 있네요.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생명이 빠져나가고 영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 그래야 우리가 부활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시지만, 우리를 고난 가운데 던지시고 내버려두시는 거에요. 성숙이란 스스로 고난의 자리에 찾아가는 거에요.
미숙이란 고난을 걷어가 달라고 떼쓰는 거에요.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게 하소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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