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12:38-50 누가 형제자매인가?

by jiroky 2021. 4. 8.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믿어야 할 것은 안 믿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무엇을 믿고 사느냐는 우리 인생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결정합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불신에 관해서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안 믿는 사람은 많아요.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공격이 뜻대로 안되니까 '선생님이여'하고 모양을 바꿉니다. 그들의 속은 바뀌지 않았어요. 믿음이 없으면서, 반드시 믿어야 할 대상을 공격하는 것, 그것이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동안 보여주셨던 기적의 현장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으면서 새로운 기적을 보여달라고 말해요.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상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규정하셨어요. 예수님이 살아가던 당시의 모습을 압축한 표현입니다. 그럼 예수님 오시기 이전은 안그랬나요? 노아 시대는? 사사시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은 악하고 음란합니다.

⇒ 성경에서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해요. 어둠은 뭡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어둠을 만드셨나요? 아니요!! 하나님은 빛을 만드셨어요. 원래 있던 어둠에 빛을 가장 먼저 만드시면서 어둠을 밝히셨어요!

악이란 선의 부재를 말합니다. 세상은 왜 하나님이 악을 창조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예요.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신게 아니라 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빛을 만드셨어요. 다시 말해서 선의 기준을 세우신 거에요. 악이란 선이 없는 상태를 말해요. 세상에 선한 사람은 없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악의 상태 그대로 있는 거에요.

⇒ 다음, 성경에 등장하는 음란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해요. 영적인 뿌리인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음란이라고 성경은 말해요. 세상이 말하는 음란과는 조금 다르지요.

⇒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무슨 표적을 더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는 너네한테는 요나의 표적 말고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사흘간의 죽음과 부활 밖에는 보여줄 증표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예수님은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 사람들이 사흘간 금식하고 회개한 사건을 예로 들고 있으세요. 니느웨 백성보다 이스라엘이 더 못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진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결국 이방인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빚으시고 십계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해주셨지만, 더 음란하고, 더 악해진 이 백성들의 형편은 결국 더 나빠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처음 상황보다 더 나빠진다고 말씀하세요.

⇒ 신앙생활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믿음 생활하다가 미끄러지면, 더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마음을 비우고 깨끗하게 합니다. 근데 거기서 끝나면 안되요. 비우는게 능사가 아니라 새로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우면 안정감을 갖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런데 비우고 나면 반드시 그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깨끗하게 비웠는데 만약 엉뚱한 생각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면, 성경을 읽어도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요. 성경을 읽으나 마나인게 됩니다. 기도를 하나 마나인게 됩니다. 깨끗이 하면서, 그 빈자리를 말씀으로 먼저 채워 나가야 합니다.

⇒ 내 생각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생각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지배하는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될 것입니다.

내가 주인입니까? 하나님이 주인입니까? 내가 주인이라면 어느샌가 내 안에 하나님을 몰아내는 자신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럼 남은 결과는 심판 뿐입니다.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 가족들의 불신을 또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네 명의 동생이 있어요.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무슨 말씀을 전하는지 가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마도 동네 사람들에게 "니 아들이 귀신들었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예수님을 향한 의심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가족들도 예수님을 안믿었다는 말이에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되려 예수님을 안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 의해서 마리아와 형제들이 밖에 있다는 것을 전해 들으시고 "누가 내 부모고, 내 형제인가"를 말씀하세요. 누가 영적 부모고, 누가 영적 자녀인지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 오해하지 마세요. 혈육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시는게 아니예요.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혈연 이상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혈육의 가족이니까, 당연히 온 가족이 믿음의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라야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가족이 영원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혈육 말고, 산앙 안에서 새로운 가족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혈육의 사랑을 넘어선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냥 짐승 같은 처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 요즘 사건, 사고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혈육의 사랑마저도 지켜내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 가정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진정한 형제 자매가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