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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18:21-35 용서해야 하는 근거

by jiroky 2021. 5. 3.

 

용서할 줄 모르는 종 비유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8장 시작되면서 제자들간에 누가 더 큰가를 놓고 다툼이 시작되었어요. 이 모습을 보고 어린 아이처럼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천국 못 들어간다고 알려주셨고, 이어서 교회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해주셨어요. 예수님의 논지의 핵심인 "단 한사람도 잃어서는 안된다"는 차원에서 용서의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정말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당시에는 랍비들이 세 번까지는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거기서 더 나가서 선심 쓰듯이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될까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엉뚱한 대답을 하세요. 횟수에 제한없이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삼세 번도 쉽지 않은데 무한히 용서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 우선, 용서란 내 자신에게는 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용서했다고 말은 하지만, 누군가가 휘~ 저으면 가라앉아 있었던 그 때의 분노가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용서라는 것은요, 나 밖에서 들어와야지 내가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란 머리로 계산해서는 답이 안나옵니다. 용서를 하려면 내가 앞서 얼마나 용서를 받았는지를 먼저 상기해야 합니다. 그럼 용서할 수 있어요.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 "천국은"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이것은 용서란 천국 시민이 경험하는 것이고 천국 시민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복은 천국시민의 복입니다. 애통, 긍휼, 용서... 쭉 나오지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여러 내용이 있지만 용서로 마무리가 지어집니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고 가장 중요한 용서에 관한 부분에 해설까지 주님이 달아주세요. 그만큼 용서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기도의 핵심은 용서에 있습니다. 그것을 놓쳐버리면 구원받은 거?? 아무 소용없습니다. 신앙의 크기는 구원의 크기를 아는 것이고, 구원의 크기를 안다는 것은 내가 주님게 용서받은 존재임을 아는 것이고 누구를 만나든 내가 용서를 받았으니까 나도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용서할줄 모른다면 예수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천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자기 정체성도 전~혀 모르는 사람인 거에요. 이기적인 그리스도인도 말이 안되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속좁은 그리스도인도 말이 안되는 거에요.

⇒ 너 몸도 다 팔고, 가족들도 다 팔아서 빚 갑아야지? 하고 던집니다. 일만은 진짜 만 달란트가 아니라 셀수 없는 엄청 큰 이란 의미에요. 결국 우리가 하나님에게 빚졌는데 그 빚을 하나님이 탕감해주신 거에요.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 탕감을 받았으면 그것을 기억하고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정작 자기한테 빚진자는 옥에 가둬버렸어요.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삶의 태도를 누군가가 임금에게 일러바쳤다는 거에요. 용서하지 못한 삶은 누군가를 통해서 다 일러바침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우리 삶을 누군가가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 안에서 젠틀하고 나이스하게 살아봐야, 정작 밖에서는 어떻게 살고 어떤 소리를 듣는지 다 들린다고요. 교회 안에서만 나이스하면 뭐합니까? 교회 밖에서도 나이스해야지요.

⇒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탕감해줬던 빚을 다시 물리고 그를 용납하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섞여살아요. 용서하지 못해 괴로운 사람, 용서받지 못해 괴로운 사람... 이 세상을 살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것이 해결되야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 다윗도 시편에서 복은 정죄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 갚없이 용서받은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이대로 괜찮을까요? 구원은 용서 사건이에요.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인간들하고 그 문제를 안따지겠다.!! 속상하고 고통스러운게 있다면 "하나님, 당신이 나 용서해 주셨으니까 이 일도 당신께 맡깁니다."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유함입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라고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내 안에 주님이 없으면 용서를 해줘도 용서를 받지 못해요. 다윗의 형들을 보세요. 다윗은 정작 용서했고 용서했다고 말해주기까지 했는데도 형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잖아요?

⇒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거지, 내가 내 안에서 용서할 수 없는 존재에요.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용서하였습니다" 사실 이게 바른 표현이지요.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용서란 우리 중심에서 일어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입으로 아무리 용서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마음으로부터 용서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을 경험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게 뭐예요? 요즘 교회가 무슨 용서를 하나 제대로 합니까? 그래서 교회가 능력을 잃었어요. 기도도 그래요. 기도를 해도 차라리 주님 앞에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 한마디 똑바로 하는 것이 백 천, 천 번 기도 많이 하고, 화려한 어휘 써가면서 기도하는 사람보다 뛰어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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