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20:17-34 더욱 소리를 지르다

by jiroky 2021. 5. 9.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 (막10:32-34; 눅18:31-34)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한 어머니의 요구 (막10:35-45)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 (막10:46-52; 눅18:35-43)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고난에 대해서 세번째로 말씀해주십니다. 이제 여리고성 건너편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십자가 사역을 향해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절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죽으러 오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할지 목적이 있다면 어떻게 살지는 가볍게 정리됩니다.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십니다. 직, 간접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무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열두 제자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죽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제자를 통해서 교회를 시작하시고 구원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교회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알고 그 길을 가십니다. 주님이 그러셨듯 성령이 임하고 권능을 받아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는 갑니다. 선교사님들은 그렇게 순교를 각오하고 부르심의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 두 아들이라고 하면 야고보와 요한이지요.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이모뻘에 해당하는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러 간다고 말씀을 계속하시는데 그들은 여전히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시는 그 질문 가운데 얼마나 만감이 교차하실까요?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예수님을 따라와서 예수님께 어떤 것을 구해야 하는지 그들은 아직도 모릅니다. 아마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 너희는 무엇을 구하느냐?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고난의 잔, 인간의 죄가 담긴 잔입니다. 피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 말씀하셨던 그 잔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그 잔을 자신들이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 예수님이 대답하시죠.

"그래! 너네가 마실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거야!"

다시 말해서 고난의 잔을 마신다고 해도 그에 대한 댓가나 보상이 정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이 크면 보상이나 댓가도 클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결정이시지 내가 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눈 뜨고 주님을 따르지만 그 분이 누구신지 아직 정확하게 모르는 거에요. 여전히 영적 무지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은 뒤에 나오는 맹인들과 대비됩니다.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어떻게 하면 으뜸이 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으뜸이 된다는 것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고 굴복하게 해서 위로 올라가 1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1등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을 섬겨서 1등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성취, 자기업적이 관심이지만 우리는 자기부인, 자기소멸이 목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세상하고 어떻게 적당히 뒤섞여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있지만 절대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누가 국민을 위해서 정치합니까? 그렇게 포장할 뿐이지요. 사람을 섬기는데 무슨 감투가 필요합니까?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많아요. 팀장 주면 섬기겠다.

⇒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라고 하세요.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라고 하세요. 그분은 꼴지가 되려고 오셨어요. 우리가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기 위해 오셨어요. 그렇게 오신 예수님을 여전히 자기 성취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두 제자들과 그의 부모를 보면서 나머지 제자들은 씩씩거리며 격분하지요. 그런데 격분한 이유는 뭘까요?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화가 난다면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동일한 이해관계에 있기 때문이에요. 교회 옆에 다른 교회가 생기면 먼저 있던 교회가 욕을 하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욕 안해요. 화가 나는 것은 나도 거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살면서 내가 과연 어떤 일에 화가 나는지 스스로를 잘 살펴보세요. 그게 본인의 모습입니다.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두 명의 맹인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꾸짖는 자들이 있어요. "왜 예수님한테 소리를 지르냐? 조용해라!!"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는 그들에게 체면, 교양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간절하게 부르짖는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에요.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물어보세요. 바로 믿음을 확인하는 거에요.

"무엇을 원하느냐??"

"눈뜨기를 원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빛을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쓰여있어요. 단순히 눈이 뜨는 것이 아니라 내 앞의 예수님이 지나가시니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지각이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 눈을 뜨고 있지만 여전히 영적 무지 상태에 있는 제자들과 눈을 뜨게 해주실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두 맹인이 비교가 되네요. 3년을 따랐지만 속에서는 세상을 추구했던 제자들이 있던 반면, 눈을 뜨고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중된 자, 먼저된 자입니다.

우리는 더욱 크게 소리질러야 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눈을 떠야할 때입니다. 더욱 소리질러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도 소리질러 기도하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한 거에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