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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19:23-30 선후가 뒤바뀐 까닭

by jiroky 2021. 5. 6.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께 왔다가 쓸쓸히 떠나는 모습을 제자들은 함께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까 고민하다가 너가 가진 거 다 팔아서 나눠주고 나한테 와라 하니까 근심 가득 안고 돌아가지요.이 청년은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였던 거에요. 재물과 하나님 중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선뜻 하나님을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우리의 모습이고 이 청년과 다를바가 없지요.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자기 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지만, 여전히 누가 큰가를 따지고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이 많아졌을거에요.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부자는 다 못들어갑니까? 아니지요! 아브라함도 이삭도 삭게오도 마태 이런 세리들도 모두 부자였어요. 부자도 부자 나름이에요. 부자의 유형을 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돈 자체가 목적인 구두쇠형이에요. 한 번 손에 쥐면 절대 나가지 않아요. 두번째로 권력형 부자가 있어요. 돈을 가지고 사람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부자지요. 돈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만족을 누리는 유형이 있어요. 마지막 세번째는 청지기형이에요. 돈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돈으로 누군가를 섬기는데 더 큰 보람을 찾은 사람이지요. 섬기는 곳에 돈을 쓰는데 뭐가 나쁘겠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앞의 두 사람을 의미하지요.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을 돈을 가지고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이지요. 세상은 소수의 부자와 부자가 되고 싶은 다수가 살아가는 곳이에요.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르게 성립될 수가 없어요.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겸하여 섬기고 싶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돈을 예배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돈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돈이 가치있는 곳에 쓰일 수 있어요.

딤전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사랑은 몰입하는 거에요. 하나만 깊게 사랑할 수 있어요. 둘 다 사랑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돈을 모을 수 없느나? 그건 아니에요. 돈이 많은 사람은 다 하나님을 안믿나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비전대로 가다보니 돈이 따라오게 된 거지요.

사실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얼마나 큰 믿음이 있어야 하는지 몰라요. 그만큼 돈은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해요. 그러니 이 세상이 돈에 이렇게 심취해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러나 주님은 구원에 관한 문제로 직결시켜서 돈이 구원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사람이 가진 그 어떤 소유물로도 구원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하세요. 부자는 다 팔아서 주라는 말에 시험받아서 돌아갔지요? 삭게오는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이 임했다고 말씀하세요. 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다 팔아서 반만 헌금했는데 죽임을 당했어요. 똑같이 반만 드렸는데 누구는 구원을 받고 누구는 죽임을 당했어요. 뭐가 다를까요? 그것은 바로 우선순위에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이냐 돈이 앞이냐 결정해야 합니다.

스가랴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요. 위로부터 오는 영으로 구원을 받는 거에요.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베드로가 또 질문해요. "우리는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우리한테는 뭐가 남아있는거에요?"라고 물어봅니다. 사실 다 버리긴 뭘 다 버렸겠어요. 오늘은 재물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사실 자기 안에서 재물뿐만이 아니라 원하고 바라는 게 얼마나 많겠어요? 예수님께서 측은히 여기셨는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들어가게 될거야!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의 힘입니다. 돈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말씀을 기준으로 그 영향권 안에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이 30절처럼 선후가 바뀌는 것이 인생의 묘미 아니겠어요? 돈이 많다고 언제나 돈이 많습니까? 돈이나 권력도 선후가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신앙은 어떻겠어요? 날마다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돈이나 권력은 없어지는데 시간이 걸리죠? 하지만 은혜는 하루 아침에 빼앗길 수 있다는 거에요.

이 절을 통해서 제자들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열두제자에 들었던 가롯 유다는 결국 자살하고, 나중된 바울이 열두 제자를 추월해 가는 것이 신앙이에요. '우리집은 3대째 기독교 집안이에요, 우리 집안에 목사가 둘입니다. 나는 장로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어제 믿어도 오늘 천국이 내 안에 가득차 있는 사람은 42대째 믿어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을 추월하게 되는 거에요.

믿음생활을 오래했던 사람은 되려 공로주의에 빠지기 쉬워요. 교회를 내가 얼마나 섬겼나 이 생각을 하다가 넘어지고 마는 거에요. 1년간 새벽예배 나온게 자랑거리에요? 40일 금식기도 한게 자랑거리에요? 아니요! 전혀 자랑할 꺼리가 못됩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제대로 쌓으면 되요. 선줄로 알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오늘 하루 잘 쌓고 오늘 하루 주님을 마음껏 누리세요. 어제 천국이 내 것처럼 살다가 오늘 실족하는게 신앙이에요.

인생에 가지고 못 가지고가 큰 차이가 아니에요. 가장 큰 차이는 댓가를 바라고 사는 자와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그게 선후가 뒤바뀌는 까닭입니다. 우리 삶은 은혜로 살기 때문에 댓가를 바라고 사는 사람과 견줄 수도 없는 하루를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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