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막12:28-34; 눅10:25-28)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8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39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0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막12:35-37; 눅20:41-44)
41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2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3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4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5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을 향한 파상공세가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 또다른 율법사가 나와서 계명을 묻습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계명을 만든 분에게 계명을 묻는 거에요.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예수님께 어떻게 질문하든 그들은 상상도 못한 대답을 듣고 물러납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르다는 것을 날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늘 그 대답은 세상의 생각을 뛰어 넘는 대답입니다.
⇒ 질문자는 모세5경을 통째로 외우는 율법 전문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율법 기준을 세우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이 예수님을 테스트하기 위해 옵니다. 이 질문은 당시 율법사들 사이에서도 즐겨 토론하던 주제였습니다. 사실 질문의 가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 중에 크고 작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일거리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율법은 그들에게 생계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말씀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말씀이 생계 수단으로 여겨 버려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거기 붙어서 직업처럼 되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8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39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구약에서 두 계명을 꺼내 이야기하십니다. 결국 두 계명은 한 계명입니다.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알면 우리도 그렇게 됩니다. 온 마음으로 그 분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생명을 걸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왜?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까요. 우리의 이성과 감성 온갖 인격적인 의지를 다해서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사랑이지요. 사랑은 그분에게서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은 그 분의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에요. 그래서 인간끼리의 사랑은 더욱 목마르기만 할 뿐이지요.
⇒ 둘째도 첫째와 같다고 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근데 하나님 사랑에 반대되는 말이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께서는 너무 답답하시니까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뭐 다른 일을 해서 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성립되고 완성되는 나라입니다. 그럴려면 자기를 내려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사랑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오고 그 받은 사랑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줘야 하나님의 나라가 출현하는 것이지요. 내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끼리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일이고, 그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진짜 율법의 완성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율법은 자동완성이라는 것이죠.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키나 안지키나 감시하기나 했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했겠어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았겠어요? 율법의 본질은 사랑인데 그 본질은 놓치고 율법만 지킨거지요.
⇒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지요? 당신은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합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아버지가 일하시니까 나도 일한다였습니다. 이 말의 속뜻은 병자를 고치는 것이 왜 일이냐? 나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사랑하시니 나도 사랑한다"라는 뜻입니다.
교회도 보세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사랑이 없으니까 교회 안에서도 무슨 사역부, 무슨 사역부 굳이 일로 만들어 버리지요. 그러다보니까 교회도 돈이 있어야 굴러가는 조직이 되어버린 거에요. 교회를 섬기는 것은 일거리가 아니에요.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사랑하면 일이 아니에요. 사랑이 있으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십계명도 의식적으로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웃을 사랑하면 이 십계명 자연스럽게 지키게 돼 이거에요.
⇒ 강령= 매달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둘이 아닙니다.
요일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에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사랑에 매달려야 한다.' 이것이 율법사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거에요.
40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1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 오직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처음으로 질문하십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누구냐?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이라는 것은 구약 곳곳에 기록되어 있고 그들은 그대로 말했어요.
42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3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말씀을 가지고 반문하십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는데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고백한 노래에서 말한 주인은 누구냐? 정확히 짚어주고 계십니다. 다윗조차도 육신과 혈통으로는 내 후손으로 오지만, 그 분이 메시다라고 노래한 것을 너는 모르냐?
롬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다윗의 혈통인 육신으로 오셨기에 100% 인성을 갖추시고, 100% 성결의 영으로 신성을 모두 갖추신 분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분은 육신과 신성을 모두 갖추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인간 예수로만 알아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고, 인간의 육신은 아니고 잠깐 인간의 몸을 빌려 왔다가 사라진 존재라는 이단의 사설도 틀립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44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5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 다윗이 자손을 보고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반문하시니까 아무도 대답을 못하지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신 메시아를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추신 분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건저낼 메시아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저 가난이나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메시아라고 생각했지 근본적으로 죄로부터 자유케 해주시는 본질적인 자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 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못박아 죽이고, 영생을 못박아 죽인 자들이 된거에요. 그리고 주님은 부활하시고 참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시게 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율법을 지키는 우리가 아니라 율법이 지켜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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