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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22:15-22 주인에게 돌려주라

by jiroky 2021. 5. 13.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막12:13-17; 눅20:20-26)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올무에 걸리게 할까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어딘가에 사로잡혀서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아야하는 것에 붙들리는 경우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의 영역에서 활동합니다. 내가 어떤 생각에 말려 들어가 있을 때에 그 생각을 꼼꼼히 따지지 않으면 우리는 거기에 끌려가고 맙니다. 말씀을 읽는 이유는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붙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중심에 따라서 말씀이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생명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사람을 통제하고 부리는 수단으로 사용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설교를 가지고 성도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휘젓고 내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끌고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은 나를 바꾸기 위한 책이지 남을 바꾸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바리새인들이 자기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을 예수께 보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결탁을 한겁니다. 바리새인들은 반로마의 입장에 있던 자들이고 헤롯 당원은 친로마파에요. 반대되는 두 세력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서 힘을 합쳤단 말입니다. 그 때도 지금도 진리에 대적하기 위해서 세상이 얼마나 연합하고 있는지 너무 잘 보이지 않습니까? 진리를 탄압하기 위해서 늘 그런 세력이 연합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판별하고 있어야 합니다.

⇒ 그들이 예수님을 치켜 세우는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뭐에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입니다. 아첨의 말이지 칭찬의 말이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다 비슷해요. 그런데 동기를 보면 아첨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칭찬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이고요.

잠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아첨하는 것은 그물을 쳐서 상대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첨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 옆에는 항상 아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아첨을 자꾸 듣다보면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져요. 그렇다보니 권력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타락한 걸 모르죠.

목사도 마찬가지에요. 성도들에게서 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는 소리 자꾸 들으면 자신이 설교 잘 하는줄 착각해요. 그런데 정작 성도의 행동은 아무 변화가 없어요. 귀만 즐거웠으면 은혜 받았다고 하지 마세요. 쉽게 설교자를 칭찬하지 마세요. 잘 들었으면 삶이 변하면 됩니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 이들이 지금까지 생각한 것 중에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온 게 이 질문이에요. 세금은 내라고 해도 문제고 내지 말라고해도 문제에요. 당시 로마는 세금에 아주 엄격했어요. 세금을 안내겠다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세금 징수원에게 줬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몫으로 웃돈을 더 얹어서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불만이 더욱 많았어요.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의 동기를 아셨어요. 얼마나 악독한지 아시고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외식하는 자여, 위선자여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위선함이 가장 큰 죄악이에요.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종교인들에게만 위선자여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스스로가 신앙이 좋다고 하는 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성령에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하셨던 표현을 그들에게 하세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귀가 하는 짓을 그들이 그대로 하고 있는 거에요. 종교인의 모양을 가진 바리새인의 외형에 마귀의 생각을 갖은 사람들이 었어요.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 세금 낼 돈을 보여달라고 하세요. 우리도 이런 지혜를 가져야 해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 길을 모면해야 합니까? 방법은 성령 충만 밖에 없어요. 성령 충만하고 전신갑주를 입고 있으면 우리가 할 말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 맞딱뜨렸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입을 통해서 다 말씀해 주시니까요.

⇒ 조세정책이 너무 가혹하니까 유대인들이 민란까지 일으켰어요. 또 로마화폐에는 앞 면에는 로마황제의 얼굴이, 뒷면에는 제우스 형상이 그려있고 신의 아들이라고 글씨가 써 있었어요. 유대인들은 그런 로마화폐 자체가 십계명을 위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마 화폐를 드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이 쓰는 동전을 통용하도록 허용해 주었지요.

⇒ 예수님이 동전을 내보이라고 하시니까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황제의 초상이 있는 로마 화폐를 내밀었어요. 예수님이 물어보세요. "동전에 그려진 이 얼굴과 글이 누구냐?" 하니까 가이사입니다라고 답하지요. 그러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 원어 성경을 보면, 19절에 나오는 '낼 돈'에서 내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그 '내다'라는 단어가 쓰여요. 그런데 21절에 '바치라'라는 표현은 '돌려주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이 말은 하나님께 돌려주라는 뜻입니다. 내는 것과 돌려주는 것은 다릅니다. 원래 주인에게 주는 것이 돌려주는 것이지요?

⇒ 가이사의 돈 이건 세상 것이란 말이에요. 인간은 어때요? 인간은 지을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어요. 그리고 우리 입에 말씀을 넣어준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사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교회도 조심해야 해요. 내 성도? 내 교인?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요!! 내 교인, 내 성도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람만 있을 뿐이에요. 단순히 은화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신앙의 기준과 축을 세워주시는 말씀이에요. 세상 것은 세상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면 끝이에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쓰다가 가는 거예요.

⇒ 동전 하나 놓고 이런 말을 누가 할 수 있겠어요? 그들이 감탄합니다. 로마의 조세 정책을 비판합니까? 아니지요. 세상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자칫 세상과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고 하지만 주님은 세상에 저항하라고 하지 않으세요. 우리 중심이 하나님에 속해서 살 뿐이지요. 때로는 악한 권세에도 복종하라는 것이 바로 그거에요.

롬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롬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것이 성경적 입장입니다. 주님께서 다스릴 때가 되면 반드시 다스리십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가 무너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의 원칙을 알려주십니다. 세금이 억울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내꺼 아니니까 세상의 것이니까 그냥 내라고 하면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러라고 하시네요.

벧전2:13-15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악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날마다 고통스럽겠지만, 우리는 말씀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에 고통스러워 하지 말고, 세상의 책임을 다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쉬운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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