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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 27:1-26 십자가에 못 박으라

by jiroky 2021. 6. 1.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다 (막15:1; 눅23:1-2; 요18:28-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유다가 목매어 죽다 (행1:18-19)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예수를 넘기다 (막15:2-15; 눅23:3-5, 13-25; 요18:33-19:1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에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합니다. 두번째는 가롯유다지요. 예수님을 판 유대 외에도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난 제자들도 두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을 주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배신을 하지요. 세번재는 쉽게 선동당하는 무리들을 봅니다. 쉽게 선동되어서 고함을 지르고 예수를 못박으라고 소동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오늘 볼 권력자 빌라도입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 모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됩니다. 그럼 각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봅시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 하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역사를 주관해 오시지만, 그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모의하고 계책을 짜냅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을까요? 당시 신성모독은 돌로도 쳐죽일 수 있는 명분이에요. 그런데 유월절날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의 의식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빌라도라는 이방인에게 예수님을 넘기면서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들고 싶었던 거지요.

⇒ 그런데 빌라도에게 넘기려면 신성모독가지고 안되요. 그래서 그들은 죄명을 일부러 세 개를 만들었어요.

눅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첫째, 백성을 미혹하여 소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민란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우려했어요. 두번째는 가이사에게 세금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거에요. 실제로 그랬나요? 아니죠. 세금을 바쳐야 하나? 안되나?하는 질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라고 했고,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게 하면서까지 세금을 착실하게 냈던 분이에요. 마지막 세번째, 자칭 왕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왕이라고 함으로서 가이사에게 정치적 음해를 가했다는 누명을 씌운 것이지요.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유다가 뉘우쳤다고 되어 있어요. 뉘우쳤다는 것은 회개랑 달라요. 그냥 속이 편하지 않은 거에요. 베드로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통곡하고 회개했지만, 그는 그냥 후회했어요. 그래서 받은 돈을 돌려주려고 다시 대제사장에게 가지고 갑니다.

⇒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말해요. 그런 가롯 유다를 대하는 대제사장의 태도를 보면, 무죄한 피를 팔았으니 이제 저주를 받을텐데 니가 판 거니까 그 저주를 그냥 니가 받으라고 말해요. 여러분!! 세상은 늘 이렇게 작동된다는 것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당한 일을 부하에게 시켜요. 발각되면 어때요? 부하가 뒤집어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세상과 타협은 정말 두려운 거에요. 한 통속이 되어서 움직였지만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거지요.

⇒ 결국 그는 자살하고 맙니다.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 마태는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서 모든 일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은 삼십을 성전에 던져놓고 자살한 것, 그리고 대제사장들이 그걸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 모두 스가랴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스11:12-13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 대제사장의 무리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자, 끝내 결백하고자하고, 성결하고자하는 노력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은 삼십도 성전에 두는 것이 부정하다고 말해요. 그들의 이 생각은 신명기에 근거한 내용이에요.

신23:18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불의하게 번 돈은 헌금으로 쓰일 수가 없다는 거에요. 자기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놓고서는 정작 죄인이 드리는 헌금은 안받겠다는 사람들이에요. 얼마나 위선적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건저내는 이들이다라고 말씀하시죠. 종교적인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거룩을 어기는 자들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고 있습니다.

⇒ 어쨌든 가롯 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어요. 베드로는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반석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가롯 유다가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회개하면 다윗도 받아주셨고, 그 악하고 악한 아합왕도 받아주셨어요. 므낫세왕도 받아주셨죠.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받아주세요. 정말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에는 그것을 다 받아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후회는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 크게 놀라워하더라는 놀라움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뜻해요. 의로운 사람들을 심문할 때, 그들이 묵묵부답하면 심문하는 사람이 되려 두려워지는 것이 심리입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주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침묵하셨습니다. 아주 잔인하고 악독한 왕으로 알려진 빌라도는 그런 주님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 했어요.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 나름대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풀어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한것 같아요. 그래서 그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특별사면을 생각한 거에요. 그리고 그곳에 모인 무리에게 제안을 했지요. 한명을 풀어줄 수 있는데 누구를 풀어줄까? 바라바냐? 예수냐? 그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무리들은 바라바를 외쳐요.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게 권력입니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권력에 정작 자기 목이 걸려서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말지요.

⇒ 게다가 특별히 그의 아내까지 자신이 꾼 꿈 이야기까지 하면서 이 사건에 끼지 말라고 조언을 해요. 일부에서는 그의 아내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설이 있어요. 이 일로 그의 아내는 신경을 많이 쓴 것같습니다.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 빌라도는 재판 도중에 아내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을 하니까 맘이 편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의 선동에 휩쓸린 무리들은 예수를 못 박으라고 함성을 지릅니다. 그들은 바라바를 택했어요. 어쩌면 참 슬픈 그림이지요. 여러분과 제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떤 무리에 속했을까요?

⇒ 한 번 성난 군중들의 질주를 누가 막겠어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지요.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빌라도가 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퍼포먼스지요. 그리고 말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이 사건에 나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한 저주는 너희가 받아라!"

이것은 대제사장들이 가롯 유다한테 "우리는 관련이 없어! 그 일로 저주를 받는다면 너가 받아라" 말했던 것과 다를바가 없지요.

⇒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 처형의 죄를 가롯유다와 빌라도에게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을 거에요.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아요! 그리고 백성들은 25절처럼 아주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해요. 우리는 이 말이 어떤 의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단은 무리의 함성을 통해서 예수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끼지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말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깨닫지 못해요.

⇒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하는데, 당시 채찍은 가죽 채찍에 납조각과 뼛조각을 달아놓은 거에요. 몇 대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약한 사람들은 채찍질로 죽기도 했어요.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가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로 결정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위해서 오셨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소망을 주시러 오신 분이에요. 우리가 십자가만 바라보면 소망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 처형에 연류된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머릿 속에 쭈욱 그려보시길 바래요. 그렇게 그려 보면서 그 안에 혹시 내 얼굴이 있지는 않은지 묵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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