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편 6편은 참회의 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에는 6, 32, 38, 51, 102, 130, 143편 이렇게 총 7개의 참회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회는 자기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고통이 녹아있는 시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기억하게 되면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게 됩니다. 참회가 참회에 머루르지 않고 어떻게 다시 새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윗은 엄청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근원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고난조차도 하나님 안에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다른 어떤 것을 부르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을 부르는 믿음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고난이 가져다주는 아픔을 뭘로 해결할거냐는 거지요.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면 속이 시원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요.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믿음으로 이 고난을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 믿음이라는 수단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도 없고, 믿음이 아니고서는 현 상황이 해석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분노하는 거에요. 믿음이 오면 믿음은 이 고난이라는 상황을 해석하는 틀을 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고난을 해석하고, 또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견디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견디면 고난이 물러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필요하고도 강력한 능력입니다. 믿음 없이 뭘 하겠어요? 또한 믿음은 해석되지 않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일지라도 지금 겪는 이 고난이라는 현실과 그 고난이 물러간 뒤의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믿음만큼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 사람이 나한테 무슨 해꼬지를 했거나 혹은 내가 의지로 실수를 저질렀어요.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안에서 해석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 징계를 거두어 달라고 먼저 자비를 구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복수할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뚫고 나갈까? 고민하기에 앞서서 주여 이 고난을 거두어 주세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고통스러우니까 살이 다 빠졌어요. 뼈가 떨린대요. 영혼도 떨린대요. 여러분 몸과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이 죄를 지었는데 영혼이 편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기를 간구하노라 라고 말씀 하잖아요. 모든 병이 영혼의 죄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병들이 우리의 영혼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실 때 그에게 먼저 "네 죄가 사함을 받았노라" 하지 않습니까? 중풍병 치유해주시면 되는데, 죄 사함을 받았다고 먼저 말씀하시는 거에요. 때로는 몸과 영혼이 하나처럼 기억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본인이 알고 돌아와 달라고 간구합니다. 사실 본인 회개가 먼저인데 제가 주께 돌이켰으니까 주님도 돌아와주세요. 이렇게 매달리는 거에요.
→ 구원은 영혼을 건지는 겁니다. 그는 그 범죄로부터 뼈가 썩고 영혼이 떨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맛보았고 이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어요. 그리고 "여호와여"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절박함을 드러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까? 그런 경험이 다 있으실 거에요.
→ 헤세드 주님의 사랑, 인자, 자비로 나를 구원해주세요!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자격이랑 관계되지 않아요. 구원은 우리의 능력에서 시작된게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의 자비라는 성품을 받아들이고 매달리고 하는 태도를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할 수 있다 믿어도 태평양 헤엄쳐서 못건너갑니다. 배나 비행기라는 통로를 이용해야 되요. 구원도 통로가 필요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 자비라는 통로를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이란 통로를 통해서 구원을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교회봉사 또는 사역 열심히 하고 교회 나오면 내 믿음이 좋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여러분! 그 믿음 태풍 한 번에 훅 날라갑니다. 그러니 너무 내 믿음 자랑하지 마세요. 믿음의 용사 다윗도 한순간에 실족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어요. 주의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 이런 형편과 처지에 놓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의 사랑에 근거해서 하는 그의 기도에는 내가 주님가면 주님 내까 어떻게 주님께 감사합니까? 역으로 해석하면 살아있기 때문에 제가 주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고 기억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살려주세요!! 아무리 어렵고 관 가운데 있어도 감사, 찬양이 있으면 우리가 살아나는 거에요. 살아있기에 감사하고 살아있기에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는 거에요.
내 믿음을 거둬가도 실수가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 아무리 기도하고 찬양을 해도 현실은 안바뀐단 말입니다. 하도 울어서 침대가 눈물에 둥둥 떠있다고 표현합니다.
→ 신경 많이 쓰면 눈이 안보입니다.눈이 어두우면 네 몸이 어두울 것이고 눈이 밝으면 네 몸이 밝을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늘 마음을 가볍게 하고 눈이 밝아지도록 밝음을 유지하는 것이 영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 기도는 늘 우리에게 역전극을 허락합니다. 큰 잘못으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오면 우리는 회복을 경험합니다. 다윗이 이제 회복되었어요. 회복 후에 이제는 담대히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는 자들아! 날 떠라! 그만해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다 들으셨다."
→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더 이상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고, 내 기도를 받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매이거나 사람들에 목말라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만인이 나를 진친다고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비록 고통의 시간을 견뎠지만 기도했더니 내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회복을 경험하는 겁니다. 들어주시던 들어주시지 않던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오면, 털고 일어나 하나님과 다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 처음에는 본인이 부끄러워하고 심히 떨다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드니까 태도가 확 바뀝니다. 이제는 적들이 벌벌 떨고 물러가게 될거라고 합니다. 이제는 반전되어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벌벌 떨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탄이 벌벌 떨어야지 왜 우리가 벌벌 떱니까? 함께 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귀신들이 덜덜 떠는 하루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당당히 밝히고 갈 수 있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저들입니다.
→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게 있다면 이 시간 눈물로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 했음에도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 없이 돌아가는 시간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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