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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시)

[1일1말씀] 시편 10:1-18 여호와여 도우소서

by jiroky 2021. 6. 10.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게 해주기 위해서 이 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나의 아픔과 이 어려움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는 순간이 올 때마다 제일 먼저 흔들리며 던지는 질문은 과연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왜 가만히 있으십니까?입니다. 이 시편 기자도 동일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9편과 10편은 이어져 있는데, 분명 9편에서는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찬양해요. 찬양과 감사에서 시작했어요. 근데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터저나오기 시작하면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다윗의 마음은 지금 어떨까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라는 거에요. 두 번이나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말합니다. 표현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하나님 비겁하게 왜 숨어 계십니까?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질문하는 거지요. 근데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뒤에 나오는 고백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시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낙심해서 믿음을 잃을뻔 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 온 세계 만물을 창조하신 분, 그 창조의 역사 가운데 그 분의 사랑이 다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탄원시는 패턴이 분명히 있어요. 처음에는 불러요. 함께 계시는 분을 불러요.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이제는 하나님 밖에는 부를 분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 고백하는 게 있어요. 내가 과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회만 되면 배반하려는 악인의 모습을 도모하는 사람인가?

'어찌하여'를 두 번 부른 이유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붙드십니까? 이것에 대한 고백이에요.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무신론자일까라는 거에요. 이 사람들은 누구에요?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이에요. 9편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들은 구원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에요. 40년 동안 옷도 헤지지 않고 신발도 낡지 않는 기이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런 그들이 무신론자처럼 사는 거에요. 이것은 이 시대도 동일해요. 이런 일이 어디서 일어나요? 바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생의 삶의 주인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따로 두고, 내 중심 생각이 나를 주장하기 때문이에요.

→  악인들이 항상 도모하는 것에는 목적이 있어요. 되도록 하나님과 멀어지려고 하는 목적. 되도록 하나님과 동행을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을 도모해요. 왜냐하면 신처럼 살아보는 게 너무 유익한 거에요!! 하나님처럼 되보니까 자기 삶이 더 돋보이는 거에요!!

악한 사람들은 늘 배반합니다. 배반이라는 말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청소년 수련회를 떠올려 보면, 가끔 성경 암송을 해야 밥을 주는 수련회가 있어요. 여러분 이때 내가 밥을 먹기 위해 암송합니까? 아니면 암송하기 위해 밥을 먹습니까? 식전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그 기도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는 거죠. 배반이란, 축복은 하나님께 다 받아놓고는 하나님께는 내 마음을 드리지 않겠다는 거에요. 배반이 원어로 축복하다, 무릎꿇다란 의미에요.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는 하나님 앞에 절대 무릎 안꿇겠다는 거에요. 근데 내가 희망이 없을 때, 내가 좌절했을 때는 하나님을 찾겠다는 거에요. 이게 바로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거에요.

세상 사람 만날 때는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요. 교회 안에 오면 내 바로 옆에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위선이 드러난단 말이지요. 이것 또한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 악인의 특징을 잘도 찝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마 많이 만나봤겠지요. 근데 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악인이 있다는 거에요.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다윗이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가 언제냐면 그가 나가는 싸움마다 이길 때에요. 그가 왕궁의 지붕 아래 있을 때에요. 끝까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온 악인보다 더 악인이 있다는 거에요. 바로 은혜 가운데 나를 살려 주셨던 하나님을 한순간에 배반한 내 안에 더 악한 악인이 있더라는 거에요.

그의 길, 그의 마음, 그의 입. 누구 길? 누구의 마음? 누구의 입이에요? 처음에는 하나님의 길이라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내가 선택을 잘했어! 이제는 다음부터 내 길 갈꺼야!" 여기서부터 내 안의 악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우리의 길,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입이 항상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시기를 우리는 간구해야 해요! 말씀의 파수꾼으로 세워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탄원을 하는 거에요. 혹시 탄원할 거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매우 위험한거에요!! 우리는 날마다 깨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내 신세가 옛것으로 돌아갈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막아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 밖에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입, 말씀!!! 그 소유권을 바꾸세요. 그게 구원이에요.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이 표현이 저는 너무 와닿는게 뭐냐면, 누군가 악을 행해봤던 사람이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정확하게 진술하는 것만 같아요.

삼하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1절을 보면 다윗이 길이 달라요.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틀려졌어요.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아서 무죄한 자를 죽이는 악이 어떻게 시작되었냐면, 그는 그냥 홀깃 봤는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본 거에요. 이 이야기를 잘 따라가 보세요. 그가 죄를 지었으면 바로 하나님께 자복하면 돼요. 근데 어떻게 해요? 살인교사를 해요. 심지어 나중에 이 사건 때문에 암몬이 자기 딸을 범했을 때도 아무말 못해요. 앗살람이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아무 말 못해요. 문제는 이렇게 커져요. 그러니까 왜 내 생각과 내 뜻을 하나님 앞에서 관철시키려고 합니까?

11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이 뻔뻔함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그래서 12절부터 나오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되고 우리 입술에서 떠나면 안되는 말씀이 됩니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전쟁이 선포됐어요 누구와의 전쟁? 안에 있는 내 본성과의 전쟁이 시작된거에요. 하나님!! 움직여 주십시요! 이제 저를 멈춰 주십시요! 저를 넘어뜨려주세요! 저를 구원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는 이유는 딱 하나에요. 승리하기 위해서에요.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오늘 이 말씀 가지고 오늘 하루 살게 해주세요. 내 생각, 내 판단이 있다면 무너뜨려주세요. 기도하며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어찌하여'가 여기 또 나오네요.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어찌하여는 좀 달라요. 나의 이런 인생을 보고도 어찌하여 죄인 중의 죄인인 저를 구원하셔서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동행해 주십니까? 이 고백이에요. 그런데 이 고백이 시작되면 또 유혹이 와요. 시편 22편 1절에 이 말을 또해요.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어요.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응답해주셨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건 어떤 표현이에요? 결국 하나님은 우리 안버리신다는 말이에요.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이에요.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응답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신다는 거에요. 한 번도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는 거에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을 보세요.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딱 하나에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는 그 분의 넘치는 사랑을 넘치게 받고, 그 받은 사랑을 넉넉하게 나눠줄 수 있는 삶으로 그 길을 정한다면 우리는 악인의 길로 가지 않아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늘 가득가득 채우고, 그것을 베푸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다 하신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결국 이런 탄원을 하는 이유는 기대려고 그러는 거에요. 하나님! 당신께 기대지 않으면 저는 다른 길로 빠지고 맙니다. 그러기 싫으니 주님 앞에 자리를 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다시 읽고 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세요. 우리는 고아에요. 왜냐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어요.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서 세상 속에서 사는 방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우린 고아에요. 그런 고아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입적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우리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재인식한다면, 이제 내 안에 악함은 꺾여요. 그래서 악인의 팔을 꺽으소서라고 표현하는 거에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는 이것을 꺽어 주옵소서!! 그리고 내 안에 아직도 숨어서 도사리는 이 악한 본성을 끝까지 찾아 주옵소서 깨닫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역경으로 다가온다면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내 안에 내 스스로가 아직 컨트롤 못하는 악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이 악한 불순물을 제거시켜 주옵소서.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결국은 "하나님이 없으면 저 못삽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에요. 하나님께 구걸하는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에요. 내가 못지키는 내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분께 나를 드리고 싶어하는 갈구함이에요. 그 분께 맡기고 의지하는 거에요.

여러분! "어찌하여"라는 문제가 분명히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내 안에 있는 생각을 우리가 얻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것을 겪게 하시는 이유는 딱하나에요. 우리가 이 문제를 어찌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분이시라는 그 믿음. 그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에요. 그리고 주신다고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을 알려주시길 원하세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훈련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오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우리의 맘대로 살지 않고, 우리의 말을 하는 인생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의 말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의의 길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이끌어 주세요!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세요.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나아가는 그리스도인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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