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 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굳이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길게 소개되는데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70명의 이복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 힘으로, 불의한 방법으로 왕이 됩니다. 그리고 끔찍한 결과를 얻게 되지요. 외부의 위협이 아닌 내부에서 자라는 위협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면서 사사로 세워지는데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바알 신상과의 계약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세상적 사고로 권선징악, 인과응보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는지 아는게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더니 이제 밖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갈등까지 겪게 되는 것을 봅니다.
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 70명의 아들 중 살아남은 요담은 세겜을 향해서 질타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호응하지 않아요. 어떻게 우리 아버지 기드온이 너희를 구원해냈는데 너희가 어떻게 나의 형제 70명을 죽이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울 수 있냐?
아들 요담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기드온이 먼저 하나님을 배반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배신한 기드온이 그의 아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는 이야기에요.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할 때 그를 미워하기 보다는 나는 배신한 일이 없나?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 그런적이 없나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 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 요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함을 봅니다. 이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었다면 아비멜렉도 세겜도 기쁠꺼다. 결국 인간의 참된 기쁨은 의로움에 있다는 겁니다. 기쁨은 소유에 있는게 아니라 진실됨에 있다는 겁니다. 진실하지 못한 인간은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어요. 성경적인 의로움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놓여있는 겁니다. 인간은 행위로 기쁨을 찾으려하지만 하나님은 관계로부터 기쁨을 찾으라고 하세요.
그 후 요담은 브엘이라는 지방으로 숨어버립니다.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3년이나 끔찍하게 백성을 다스린다고 있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있습니까? 질문할 수도 있지만, 그 침묵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부재하지 않습니다. 배반의 악한 영들을 아비멜렉과 세겜에게 보내신 겁니다. 배신의 결탁을 했던 아비멜렉과 세겜의 사이에 균열이 가게 됩니다.
→ 성경은 피를 냈을 때, 반드시 그 핏값을 받게 하십니다.
창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당신의 백성을 죽인 사람을 하나님은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참17:11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악한 자, 다시 말해서 불성실, 거짓을 일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잔인한 사자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 세겜은 아비멜렉을 배신하기 시작합니다. 아비멜렉의 통치력에 큰 타격을 입힙니다. 중요 교역로에 숨어 있다가 지나는 사람을 다 강탈하니 교역이 끊기고 나라의 재정은 어려워지죠.
→ 하나님께서 악을 다루시는 것을 구원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잃어버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것은 좁고 작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으로만 성경을 보지 마십시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서 이 모든 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시대에 나는 왜 부르심을 받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을 일상 가운데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하는 매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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