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예수님은 줄곧 갈릴리 중심으로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요단강 지경으로 옮기셨습니다.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 십자가를 질 준비를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에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오는 목적과 가는 목적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다시 큰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나 모두 동일한 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간절한 마음으로, 누구는 호기심 때문에... 아주 다양하지요. 바리새인들처럼 어떻게 하면 예수를 넘어뜨릴까하는 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각 사람의 목적도 이렇게 다양하겠지요. 예수님 주변에는 이렇게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 바리새인들의 질문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생각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고, 이 문제를 건드리면 헤롯의 귀에 또 들어갈 것이고, 세례 요한처럼 죽임을 당하게 할 수 있겠다는 목적이었지요. 그리고 당시에는 이혼에 대한 견해가 둘로 나뉘어 있었어요. "이혼 절대불가"와 "이혼은 마음껏" 이렇게 두가지로 말이지요.
신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명기 말씀에서 '수치되는 일'에 대한 해석을 보면, 한 학파는 간음한 일로 봤고, 다른 학파는 남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일이면 이혼은 언제든 OK였어요. 한 예로 아내가 빵을 구웠는데 빵이 탔어요. 남편이 빵이 타서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면 이혼 OK 이렇게 말이지요.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창세기에서 찾고 있습니다.
창2:24-25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어떻게 둘로 나누냐는 것이지요? 결론은 이혼은 원래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첫번째 계명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오고 타락하면서 이것을 편한대로 막 이용해 먹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하십니다.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 본래 이혼은 안하는 것인데, 너희들 마음이 워낙에 악해서 괴롭히고 때리는 그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을 허락했던 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외 조항이었던 것을 가지고 보편적인 이혼법으로 확장시켜 놨으니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해야 마땅한 거지요. 하지만 안한다고 해서 또 그것을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이 이 대답을 듣고 걱정이 되서 질문을 던집니다.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 예수님! 그렇다면 차라리 장가 안가는 게 낫겠네요.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 선천적으로 고자도 있고, 이디오피아 지역의 내시가 그랬던 것처럼 후천적인 고자도 있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스스로 결혼을 안하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다.
고전7:1-2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사도 바울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면 내제되어 있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혼인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7:6-9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7: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독신이었던 자신의 입장에서 독신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지만, 스스로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합니다. 사실, 오늘날 수도원이나 독신으로 지내는게 바람작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독신으로 지내면서 얼마나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의 범죄가 많습니까? 사실 미디어를 통해서 밝혀진 것만 해도 끔직한게 많죠. 독신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만 보더라도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독신이 기혼보다 한 등급 높다 이런 말은 없습니다.
⇒ 차라리 결혼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함께 겪으면서 돕는 베필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결혼이 행복한 부분도 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 있던 사람이 만나서 맞춰간다는 것은 고통이죠. 그 고통의 시간의 이겨내면, 우리 인격이나 성품이 얼마나 확장되며 얼마나 깊어지겠어요?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것을 주신 이유가 다 있는 것이지요. 자녀 하나 키우는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수 있고, 평생에 남편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일일 수도 있어요. 결론은 결혼을 통해서 서로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 그러나 가정 안에서 폭력,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성경대로 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들은 상상 이상의 비상식적인 고통을 겪기 때문이에요. 교회가 그들을 품고 나눔과 베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편과 아내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 가정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결혼이지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불가피하게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뒷말을 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되려 그 깨어진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 속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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