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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삿)

사사기 10:1-9 진정한 구원의 손길

by jiroky 2021. 11. 10.

 

 

사사돌라

1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사사 야일

3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5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사사 입다

6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오늘 두 명의 사사 돌라와 야일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기록 안에서 그들에 대해 추측해보고자 합니다.

1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 극히 제한된 정보입니다. 단 두 줄이지만 주목해야할 말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말은 없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누구로부터 구원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어요. 전체적인 문맥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데...

→ 우선 돌라는 작은 벌레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통해서 그의 출신이 미천할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사사가 된 배경이 있지 않겠어요? 당시 아비멜렉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는데 돌라는 그 상황에 수긍하지 않고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외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게 아니라, 아비멜렉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내부적인 분쟁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부터 구원했다는 겁니다. 이렇듯 내 욕망, 내 탐욕, 내 자아로부터 구원을 받는게 구원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데... 불치병에서 낫고 형편이 좀 나아지는게 구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에요.

돌라는 여느 사사들처럼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게 아니라 아비멜렉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깊은 상처와 좌절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는 고향 잇사갈에서 사밀로 이사를 갔어요. 옛날 사사들은 이사를 안했어요. 자기 고향에서 사사로서 기반을 다지고 통치를 했지요. 근데 돌라는 자기 지파를 떠나서 남의 지파로 옮겨 갔어요. 민족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삶의 편안함을 버리고 에브라임으로 옮겨 간 거에요.

하나님께서 외적으로부터도 구원하셨지만, 치유될 수 없는 내부적인 상처로부터도 구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았는지 몰라도 그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해 냈어요.

3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5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 돌라가 죽고 이어서 사사 야일이 등장합니다. 야일은 빛을 발하다라는 뜻이에요. 므낫세 출신 사람인데 한 일이 아들 삼십 명 낳은 것과 각 성읍을 아들들에게 줬다는 기록뿐이에요. 이게 사사의 본업인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해도 괜찮을 만큼 나라가 안정된 상태였나? 저는 이 구절을 읽고 또 이렇게 내리막을 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야엘은 어쩌면 사사로서 공직자의 역할을 감당한게 아니라 권력의 맛을 톡톡히 누렸던 사람이구나 싶어요. 그가 사사로서 지속되는 동안 재산이 많이 불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사사가 풍요로움을 추구해가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러다보니 다시 악이 일어납니다.

6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패턴을 잘 살펴보면 압제의 기간보다는 압제로부터 고통을 줄여준 시간이 더 많아요. 죄악의 시간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시간이 길고 힘들다고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의 시간이 더 길어요.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그 고난이라고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보다 내가 스스로 자초한 고난이 더 많아요.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주신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뿐만 아니라 온갖 모든 우상을 다 섬기게 되는 거에요. 이방 족속은 그 많은 우상을 섬기면서 차라리 여호와도 끼워 섬기는데, 이들은 여호와는 버리고 우상들을 다 섬긴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민족에게 이스라엘을 팔아버리십니다. 이스라엘이 두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게 하십니다.

9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족속이 있던 곳은 가나안 땅의 정중앙이에요. 힘있는 지파들이 이곳에 살았어요. 이제 이스라엘의 핵심, 중앙까지 난도질을 당하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한 민족의 지배도 힘든데... 두 민족의 지배를 동시에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이들이 온갖 신을 다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더니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밖의 형편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는 게 우선입니다. 온갖 탐욕이 그들 안에 들어왔고 좀 더 많은 것, 좀 더 큰 것 바라다가 이 지경에 이르는 거에요. 지금 가지고 사는 거 만족하고 사는 것부터가 믿음 생활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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