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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일1말씀] 마태복음14:1-12 허영심에 찌든 인생

by jiroky 2021. 4. 17.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했던 인물입니다. 이 장에서는 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레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실 길과 떠날 길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죽임이지요. 그의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은 죽음의 잔치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의 죽음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 헤롯이 예수님의 베푸는 기적을 보고 세례 요한이 환생했다고 믿었습니다. 이 또한 불신의 형태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그랬고, 바리새인들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심지어 제자들조차 불신, 의심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하셨지요.

⇒ 헤롯의 가계도는 엄청 복잡합니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 아무도 헤롯의 불륜을 지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자 그를 감옥에 잡아들인 것입니다.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했지만 못 죽이고 가둬 두었어요. 어느날 자기의 생일이 되어서 파티를 합니다. 사실 파티는 유대문화가 아닙니다. 이방에서 들여온 문화입니다. 파티에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춥니다. 당시 추었던 춤도 매우 음란하기 짝이 없었어요. 헤롯이 그 모습을 보고 만족해 하며 뭐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것이 당시 한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음란하기 그지없고, 탐욕스럽기 그지 없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지요. 지금은 안 그럽니까? 많이 배운 자들이 되려 더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메스컴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허풍을 떨면서 뭐든지 다 주겠다고 했는데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니, 안줄 수도 없고 잠시 고민을 합니다. 이는 허영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의 대표적인 모양입니다. 흔히 말하는 과시지요. 피가 흐르는 목이 들어오는 순간, 즐겁자고 연 파티가 죽음의 파티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 한평생 말씀으로 산 세례 요한의 죽음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예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7:12-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 요한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지고 장사를 치르고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세상은 세례 요한이라는 믿음의 사람만 있는게 아닙니다. 헤롯왕 같은 허영심으로 가득찬 인간이 대부분입니다. 이 허영심은 절대로 건전한 자존심이 아닙니다. 가장 빗나간 자존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SNS가 가장 대표적인 허영심의 예시이지요. 그 인생은 절대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겁하기 때문이에요. 두렵기 때문이에요.

⇒ 진정한 용기는 약함을 인정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체면 좀 구기면 됩니다. 알았을 때 고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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