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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4:1-17 부르심에 주저하다

by jiroky 2021. 6.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다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대책이 다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무책임한 분이 아니에요. 우리를 찾아오시고 쓰시기로 결정하셨다면, 계획이 다 있으시니까 부르신 거 아니겠어요?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부르신 그 분을 얼마나 신뢰해야 하냐는 거죠.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승패가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내게 맡길 때는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라고 반응하지만, 하나님이 오셔서 일을 맡기실 때는 내가 그 일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그 분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길은 얼마나 믿느냐의 문제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존재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일은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지 않아요. 내가 못하는 것만 기도하지요. 그러나 내가 할 수 없건, 있건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죠.

오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믿음을 심어주시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부터 쭉 보면 택하신 족장들은 그들이 믿음이 좋아서 부르신게 아니란 말이에요.  믿음 없는 그들을 불러서 어떻게 믿음을 갖게 하느냐의 과정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라고 했는데, 지금 벌써 세번째 못가겠다고 버티는 거에요. 못가겠다고 전에 보였던 반응을 한 번 보고 갈까요?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 내가 누군지 아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합니까? 그래도 가라고 하니까 이렇게 말해요.

출 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안가려고 머리를 굴리려다가 하는 말이 이름에 관한 질문이에요. 누가 보내서 왔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말합니까?

그리고 오늘 세번째 이렇게 말해요. 내가 가서 이야기한들 내 말을 믿겠습니까? 너같은 사람한테 하나님이 나타날리가 없다고 말할 겁니다라고 말해요.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그에게 믿음을 심어주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로 그에게 지팡이를 던져보라고 하세요. 얼마나 답답하시면, 모세가 직접 능력을 베풀도록 해주시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지팡이도 뱀이되는 이적을 보여주시는 거에요. 근데 당시 애굽의 술사들이 이런 비슷한 마법을 더러 베풀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그런 이적들을 이길 이적을 주겠다고 지팡이 이적을 보여주시는데, 이번에는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세요. 뱀은 꼬리 잡으면 큰일나요. 바로 물어 버리지요. 근데 꼬리를 잡으래요. 그래서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됐어요. 이 정도 기적이면 말을 들어야 되지 않나요? 그런데도 모세는 안들어요. 정말 고집이 엄청 납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적을 베풀도록 하십니다.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나병이라고 되어있지만, 당시 치유가 어려운 악성 피부병이에요. 나병을 모세에게 주었다가 치유했다가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이 죽음으로 변했다가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신 거에요.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애굽이라는 나라는 나일의 선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일강에 오직 모든 것을 의존하는 나라이고 민족이었어요. 그런 나일강이 피로 변했다는 것은 애굽 전체를 살리는 생명이 죽음으로 변했다는 상징적인 의미지요. 어떻게 핏물로 농사를 짓고 먹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이적을 베푸실 수 있다는 거에요. 온 땅의 생명이 있는 것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할 수도 있고, 죽음에 있는 것들을 다시 생명으로 되돌이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믿도록 하는 가장 큰 증거라는 거에요.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 이것이 믿음의 궁극적인 신앙고백 아닙니까? 이 땅에 내가 내 능력으로 여기 와 있습니까? 언젠가 이 땅을 떠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 생명을 주셨죠? 따라서 살아도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약속을 왜 주셨겠어요? 그 분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약속을 주실 수가 있겠어요? 

부활 신앙이랑 우리 신앙의 클라이맥스고 우리 신앙의 전부에요. 그것을 반신반의 한다면, 안믿는거고 그걸 못믿는다면 우리 신앙은 아무 능력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늙는 게 하나도 슬프지 않아야 하고,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면 무슨 일이 있을까? 이런 기대가 있어야 그게 그리스도인인 거에요. 죽는 것 가지고 자꾸 두려워하면 다른 어떤 종교인이랑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자유해 지는 것, 이게 신앙의 클라이맥스에요.

주님께서 오셔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잖아요? 우리가 자유하기 위해서 신앙을 갖는 거지, 짐을 더 지려고 갑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라는데 무슨 짐 때문에 이 길 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자유가 뭔대요? 뭐로부터 자유할건데요?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자유란 소유로부터 자유에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자유에요.

진리 안에서 자유한다는 것은 더이상 우리가 소유에 묶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에요. 있어도 없어도 묶이지 않는 것. 우리는 가난하기도 했다가 부유하기도 했다가 하는 거에요. 가난하다고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고, 부유하다고 교만하게 살지 않는단 말이에요.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에요. 왜냐면 소유로부터 자유하니까요!

 그게 첫번째 자유라면, 두번째 자유는 종교로부터 자유에요. 주님께서는 이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오신 분이에요. 성전을 다 헐라. 내가 성전되리라. 그리고 너희를 내 성전으로 삼겠다. 제사는 다 없애버리고, 재물은 필요가 없다고 하셨으니 이보다 더 자유로운 신앙이 어디있어요? 요즘말로 하면 헌금이에요. 여러분! 헌금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세요. 여러분, 헌금 때문에 교회가 운영되는 것 아닙니다. 감동이 되면 십의 십조 다 낼 수도 있는 거고, 여기 낼 수도 있는 거고 저기 낼 수도 있는 거고... 그게 제사로부터 자유에요. 그게 예배로부터 자유에요. 예배는 24시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지, 교회에 잠깐 와서 찬양하고 말씀듣는게 예배가 아니에요. 예배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거지, 잠깐 여기 와서 찬양하고 말씀 30분 듣고 가는게 예배가 아니잖아요!!

그걸 자유롭게 하도록 하겠다는게 주님이 오신 목적이잖아요!! 궁긍적인 자유는 죽음으로부터 자유에요. 피었나? 하면 지는 꽃같은 게 우리 인생이에요. 잠시 있다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뭘 그렇게 손에 쥐려고 안달합니까? 뭘 그렇게 잘났다고 교만합니까? 신앙인들도 오만과 교만과 독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뭐가 잘나서 남을 정죄합니까? 우리는 절대로 남을 정죄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 눈의 들보나 챙겨야 하는 존재에요. 교회처럼 불법이나 변칙이 많은데가 어디 있는데, 뭘 사회가 정의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제대로 된 신앙의 길을 간다면 우리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가장 먼저여야 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은 이 자녀가 주님을 알게 해주세요가 기도제목인 거에요.

여러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안믿어요. 모세도 참 한 성깔하네요. 근데 제가 모세에 놀란게 아니라 하나님께 놀랐어요. 인간도 삼고초려 이상 안합니다. 근데 하나님은 오고초려를 하시는 모습을 본단 말이지요. 그토록 인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거죠. 어쩌면 모세모다 저와 여러분을 더 참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앉아있는지도 몰라요.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네번째로 한다는 핑계가 제가 말을 잘 못해요. 그래요. 근데 재미있는 게 스데반이 그는 말을 잘한다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요.

행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왕궁에서 그토록 교육을 받았는데 말 못할게 뭐가 있겠어요. 근데 40년 동안 목동으로 광야에서 잊혀진채로 지냈으니 사람 앞에 나서는 게 두렵겠지요. 그리고 모세는 바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그곳에 다시 가기가 두려운 거에요. 그러니까 핑계를 대는 거죠. 그랬더니 하나님이 진짜 열받으셨어요. 근데 잘 봐야 하는 것이 이게 겸손인지 교만인지 고집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도 비슷한 일을 겪는데요,

렘1:6-9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불러 세우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입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세요. 누가 말을 너의 입에 넣어주냐? 언어는 하나님이 주시는 언어가 있고, 사탄이 주는 언어가 있어요. 사탄이 주는 언어를 쓰면 사람을 죽입니다. 생명의 주인이 주는 생명의 언어를 써야 생명을 살리는 거에요.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난 죽어도 못갑니다하니까 그러면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붙여줄께! 내가 너와 네 형의 입에 할 말을 넣어줄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우리를 배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순종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부른 것이라면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신다면 그게 일의 시작점입니다. 내가 준비되고 준비 안되고는 아무 상관없어요.

네가 아론에게는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표현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처럼 하나님께서 너 모세에게 대언하라고 맡겼듯이 너 모세도 네 형 아론에게 내 말을 대언해달라고 하라는 이런 관계를 설명할 뿐이지 모세가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이 입을 가지고  생명의 언어를 전하는 입술되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선포하는 입술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선포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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