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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5:1-14 내가 왜 보내겠느냐

by jiroky 2021. 6. 17.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다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10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 너

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라는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선 왕 앞에 가서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든요. 일반적으로 왕 앞에 선다는 것 자체로 사지가 떨려서 서 있을 수 조차 없을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만큼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두 다리에 힘을 넣어준 거지요. 이제 그 앞에서 말을 전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오늘 그들이 바로 왕에게 어떻게 말을 전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한 갈림길이기 때문에 조금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의 원본을 우선 볼까요?

출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무슨 차이가 있나요? 첫째, 하나님께서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만 데리고 갔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장로들을 데리고 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힘을 좀 더 보려주라는 하나님의 의중이 있지만, 아론과 함께 자신감이 생긴 탓인지 둘이서만 갔어요.

두번째, 호칭을 한 번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이건 중요한 차이에요. 자기들 사이에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지만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이라고 호칭하거든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먹으면 "너희가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 근데 사탄은 와서 뭐라고 말해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반드시 죽는다'와 '죽을지도 모른다'는 차이가 커요. 이렇듯 모세가 전하건, 사탄이 전하건, 우리가 전하건 말을 전하는 것은 녹음한 것을 들려주지 않는 이상 이렇게 변해요.

세번째, 제사를 드리러 사흘길쯤 광야로 가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했어요. 근데 보세요! '내 백성을 보내라' 명령문이 되었죠? 이 '보내라'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놓아주라', '해방하라'의 의미에요. 말의 늬앙스가 달라졌어요. 그리고 제사 한 번 드리는 거랑 절기를 지키는 거랑은 완전 다른 요청이에요.

원래는 간청해야 할 사항을 명령문으로 바꾸면서 바로에 대해 직접 도전하는 태도를 취하고 말죠. 첫단추가 이렇게 끼워졌어요. 모세와 아론은 조금 아마 자신감이 생겼었나봐요. 표현이 강해졌어요. 이에 대한 바로의 대답을 볼까요?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바로가 이렇게 응답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 아니겠어요? 노예 대표가 와서 노예를 풀어달라고 하는데 어떤 왕이 "그래! 잘 가라" 하겠어요? 바로의 심기를 건드리고 전혀 다른 상황이 된 거지요. 애굽에는 신이 엄청 많아요. "너네들 신이 누군데 나보고 보내라고 하냐? 난 안한다!!" 이런 거죠. 그리고 당시에는 인간이 가지고 힘의 잣대에 따라서 신의 힘의 잣대도 평가되는 시대였어요. 바로 입장에서는 노예들의 신이 와서 보내라고 한다고 보낼리가 없는 거죠.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바로가 세게 나오니까 이제서야 하나님이 이야기한대로 이야기해요.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가서 어려운 부탁을 할 때는 지극히 조심해야 돼요. 특히나 왕 앞에 가서 요청하는 거는 또 다르잖아요! 직장에서 바로 상급자에게 이야기하는 거랑 회장 앞에 가서 이야기하는 거랑 격이 다르잖아요.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도록 전하게 했다면 토시 하나 안틀리고 전하는 게 맞죠?!! 근데 인간이 토시 하나 안틀리고 말할 능력이 있냐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 3천500년 전의 문서를 그대로 읽는 거고, 2천년 전의 신약을 읽는 거에요. 우리가 아무리 있는 그대로 전한다고 한들, 저는 이 있는 그대로 전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내 생각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 생각을 전하는 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인간은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그 말을 듣지 않고 말의 행간을 듣고 그 사람의 인격을 본단 말이에요. 그래야 정상적인 관계가 되지, 말만 들었다간 반드시 문제가 생겨요. 한쪽 말만 듣다가는 큰일 나는 거죠.

이렇게 사흘 길 걸려서 갔다가 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데 누가 보내 주겠어요? 바울은 너네 노역이 힘들지 않구나?? 내가 그냥 쉬게 해줄줄 알아?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니까 이렇게 계속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바로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죠. 편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노동의 강도를 높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여호와를 모른다고 하는 사람에게 여호와를 알게 하는 거에요.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1차적 소명입니다. 바울도 여호와를 모른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해요. 따라서 출애굽의 과정은 하나님을 아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수 많은 대립과 갈등과 투쟁이 있을 텐데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을 알게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해야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을 알게 되요. 여러분! 햇볕만 내리쬐면 반드시 사막이 됩니다. 비를 주고 바람을 주고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하기 위해서에요. 따라서 고난이 오면 기쁘게 받으면 되는데 그걸 안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고난의 시간만 깊어질 뿐이고,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어요. 인간은 절대로 편하면 기도 안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편하면 교회 안나가요!

출애굽기를 통해서 왜 10가지 재앙이나 필요하겠어요?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우상의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지는 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건이 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된 것입니다. 그냥 출애굽시키면 되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시나?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의 과정을 넣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백성을 통해서 가장 강한 자를 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아셔야 되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비굴하게 살면 하나님도 안 전해지고, 신앙도 안 자라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10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 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이렇게 노동 강도를 높이고 점점 더 학대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분열이 일어납니다. 바로의 지배 아래에서 430년간 터전을 잡고 살았던 사람들은 못나갑니다. 얻어 맞아야 비로소 떠나야 되는구나를 알게 되요. 바로의 참모들도 히브리인들을 이해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바로 주위의 사람 중에 누구 하나도 히브리인의 편에 서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 이 일을 통해서 이 세상에 소망둘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출애굽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구원은 곧 출애굽이요, 해방입니다. 종으로부터 신분의 변화입니다. 자신이 종살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만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거에요. 우리 오늘 하루가 종살이 되지 않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사는 세상의 본질을 모르면 절대로 신앙의 길로 갈 수 없어요. 신앙이란 목숨을 거는 길입니다. 누가 주인인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왕인가? 세상이 왕인가? 하나님이 왕인가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을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직 섬길 분은 하나님 뿐이라는 걸 기억하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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