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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3:13-22 스스로 있는 자니라

by jiroky 2021. 6. 15.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도대체 어떤 신이 이렇게 인간과 자상한 대화를 허락하겠습니까? 어떤 종교에서 인간이 신에게 그 이름을 물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대답해줄 수 있겠어요?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해주시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 이름은 자기 존재를 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이죠.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사실 고대 이집트는 다신주의이기 때문에 신들이 많았어요. 이런 다신교에 익숙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러 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 거에요. 40년 동안 애굽의 종교에 익숙해진 그들로서는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할 때, '너의 하나님의 이름은 뭐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을 모세는 알았기 때문에 감히 당신의 이름을 내가 뭐라고 해야 합니까 묻지요.

사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일을 피하고 싶은 태도를 보이지요. 어쨌든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다는 것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관행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영어 성경에는 'I am who I am'이라고 되어 있어요. 나는 나다. 나는 이름으로 존재하거나 이름이라는 것에 같히지 않는 존재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이름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분은 어떤 조건이나 이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부모에 의해 존재하게 된 거지요? 우리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고요. 테이블, 마이크 또한 마찬가지에요. 존재하게 된 원인? 기원이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저절로 존재하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분 이런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야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에요. 모든 신들은 사람이 붙인 이름이에요. 하지만 하나님만큼은 자신이 이름을 직접 알려주셔서 부르게 된 겁니다. 과학이란 설명할 수 있는 일들만 설명할 뿐이지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설명해도 안되는 것이 신앙의 영역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말할 수 없는 게 하나님입니다.

 사실 어떻게 말하면, 하나님을 돕는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 이것도 착각입니다. 그 분은 스스로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도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돕는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요? 반대지요. 그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거셔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고, 그 분이 표현하셔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그 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계시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배제하고는 그 어떤 것도 충분히 그리고 온전히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성경의 끝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시하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그분에게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현재이기 때문에 그 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현존하시는 분이라는 거에요.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죠.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온 우주의 먼지 하나 정도 아는 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간과 그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낸 만큼 우리는 알고자 하는 것이고, 그렇게 드러난 분을 뭐- 믿는다 안믿는다 하는 것도 사실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분이고 더 잘 믿는다고 그 분이 더 많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분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분 앞에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감히 안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인 일 아니겠어요?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영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 한 문장의 말씀을 통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주시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이 역사의 주관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인간이 인간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말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제 모세에게 구체적인 미션을 주십니다. 가서 바로에게 사흘정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하라. 애굽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으로부터 분리되어서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겠다. 이게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단절을 경험하게 하는 이유는 애굽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부터 단절되어서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질서 속에 다시 들어가서 그 분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는 이유고 구원하시는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 살자고 이 길을 가는게 아니에요. 머리를 완전히 뒤집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어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부르시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을 닮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죠)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능해요. 어떻게 영원히 거짓말합니까?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아요. 모든 인간은 거짓말 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는 게 인간인데 무슨 객관성이 있어요?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인간은 모든 말이 거짓입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말조차 거짓이에요. 어제 일도 정확히 기억 못하고 과거도 기억 못하는 게 인간이에요. 그냥 머릿속에 채색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맘대로 기억할 뿐이죠.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 기억에 의지하는 삶은 지극이 불안한 삶일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만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진리의 편에 서는게 신실함이라는 것이고, 그 신실함이야 말로 우리 신앙이 가지는 유일한 표현이라는 거에요.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왕이 절대로 너희가 가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 분에게는 시간 자체가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간이 그 분 안에 있어요. 우리는 미래가 안보이니까 불안하지만, 그 분께서는 다 아신다는 것, 그래서 전지하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분 앞에 겸손할 수도 없고, 그 분을 알아갈 수도 없는거 에요.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말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거에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떠날 때 폐물 챙겨가라고 하세요. 이것은 너네 치장하고 꾸미는데 쓰라는 것이 아니에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라는 겁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그 분께 신실함으로 나아가는 것.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게 없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 신앙은 충분합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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