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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14:1-14 절대 버려야 할 버릇

by jiroky 2021. 6. 29.

 

홍해를 건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우리는 신앙을 갖고나서부터 세상의 견해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세상적인 것과 세상적이 아닌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세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좀 경멸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이유는 뭐에요? 한가지에요. 무슨 일을 생각하건 하나님을 배제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때문이죠. 하나님이라는 상수를 배제하고 늘 변수만으로 결정하기 때문이에요. 안보이는 하나님을 어떻게 상수로 여기겠어요? 흔히 말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우리가 나무랄 수는 없어요.

근데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늘 먼저 생각하고 그 분을 가장 중요한 결정의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그 차이 밖에 없어요. 딱 두 부류에요. 풍랑 속에서 같은 배를 타지만 '아!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는 사람과 '이 파도는 반드시 지나갈꺼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죠.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위기는 똑같이 와요. 그러나 그것을 알아보는 관점이 다른 거에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고자 하는 그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는 거죠. 풍랑이 이는 바다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도 한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죽을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살아도 죽어 있다가 죽는 거밖에 없어요.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오늘 하루를 살면서 어떤 태도로 살건지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살거냐? 세상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같이 살거냐?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하나님께서 바다에 장막을 치라고 하세요. 바닷가에 장막을 친다는 것은 배수진을 친다는 거에요. 상식적으로는 안 맞는 이야기에요. 누군가가 추격을 해오는 상황에서 앞은 바단데 거기다 장막을 치라니요? 그리고 믹돌은 국경 수비대가 있는 곳을 말하는데, 아니!! 군대와 바다 사이에 장막을 치라는 거에요.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찌보면 해서는 안될 결정을 내리신데는 이유가 있는데, 애굽 사람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세요. 이스라엘은 지금 도망가기 바쁜데, 하나님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 바다에 장막을 치라고 하세요. 지금 하나님의 목적과 이스라엘 백성의 목적은 달라요.

→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 앞에 놓였을 때 이게 과연 하나님의 결정인지, 아니면 나의 결정인지 정해야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우리는 대게 내가 이익이 나는 방향으로 결정하려는 욕구와 본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애굽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 지내고 온다더니 다 도망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그들이 제사 지내겠다라고 말하고 떠났는데 안돌아올뿐만 아니라 아예 나갈 궁리를 한다는 것을 바로가 알아버린 거에요. 그래서 다 잡아와야겠다 한거지요.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바로도 하나도 안 변했고,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신앙이란 이렇게 안 변하는 두 부류를 사이를 지나는 거에요. 모세는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있어요. 지금 모세와 아론만이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에요. 믿음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으면 이렇게 늘 중간 입장에 섭니다.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요, 다른 하나는 일단 부름을 받긴 받았는데 종교적 틀에 갇혀서 변하지는 않은채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 앞에서 고스란히 믿음 없음이 드러납니다. 애굽은 손해 앞에서 반드시 본성을 드러냅니다. 서로가 이익이 나면 상관 없어요. 그러나 손해가 나면 반드시 본색을 드러내는 게 세상이고,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위기가 닥치면 본성을 드러나는 게 종교인들의 실상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믿음을 가졌다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믿음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 믿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이게 신앙의 전부에요.

재앙이 닥치니까 빨리 내쫓자고 했던 애굽도 되돌아보니까 견딜 수 없는 손해 앞에서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이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절대 변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근데 종교인들은 변한 줄 알았는데 위기만 오면 변하지 않은 본성이 다 드러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거에요. 겉으로 보았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얼마나 신앙이 좋아요! 그러나 손해 앞에서 반드시 그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돌아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겉은 멀쩡하지만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고, 독사의 자식들이고, 자기가 천국문을 막고 자기도 못들어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교회에서 왜 싸워요? 자기가 손해보거나 위기가 닥치면 믿음 없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죠. 

홍해를 건너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부러 바다곁으로 인도하셔서 홍해를 넘어가게 하는 이유가 있으시단 말이에요. 애굽은 이들이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군대를 데라고 가는 거고,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없음이 드러나는 거죠.

 신앙이란 첫번째, 보이는 위기 앞에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의 방식이에요. 두번째,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것을 택하는 것이 신앙이에요. 그래서 죽기로 결심하지 않으면 신앙의 길을 못가요. 착각하지 마세요. 이 길은 살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가야 사는 길이 열리는 거에요. 그걸 지금 이 장면에서 다 보여주시잖아요!! 빠져 죽을 바다를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라는 거에요. 정작 우리도 큰 위기 앞에 닥치면 두려워서 떨 수도 있지만, 평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가가 오더라도 이 위기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안되면 죽죠 뭐! 다니엘의 세 친구 보세요.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리라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한 번 죽음을 맡닥뜨리지 않고는 절대 믿음은 생가지 않아요. 홍해 사건이 우리 신앙 가운데 반드시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그걸 경험하게 하는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는 바른 신앙을 위해서에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위해서요.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거에요. 그 분이 없으면 난 늘 죽은 목숨이다 고백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코너로 모는 거에요.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지금 모세 한 사람만 믿음이 있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의 표정을 한 번 상상해보세요. 무슨 살 길이 있어요? 뒤는 바다고, 앞은 군대가 오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일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죽자는 거죠. 가만히 서 있으래요. 혼란스러울 수록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데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더 빨리 침몰하는 거죠. 뭐-.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래요. 구원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무력함을 시인하는 상황에서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근데 말이 쉽지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머리가 돌 지경이지요. 근데 실제로 살다보면 이런 상황을 만나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냥 파산을 겪어야 하고, 그냥 죽음을 맞아야 하는 상황. 그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거에요. 그 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 우리가 뭘 붙들어야 되요? 약속을 붙들어야 지요!! 하나님이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했으면 치면 되요. 세상을 살면서 이런 기로에 우리는 날마다 섭니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더 짦아질 것이고 그 크기는 더 커질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씀의 언약을 붙들지 않으면 이 위기를 절대 넘기지 못해요.

'두려워하지말라' 이 말만 들어도 숨이 쉬어집니다. 하님께서 이 나라를 지키시고 계심을 믿어야 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슨일을 하시는지 믿고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두려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 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길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게 우리 믿음의 전부에요. 각자 받은 말씀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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