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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15:22-27 쓴물이 단물이 되다

by jiroky 2021. 7. 10.

 

단 물로 변한 마라의 쓴 물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길을 걷다가 물을 얻지 못해 고통스러운 가운데 샘물을 발견했는데, 써서 먹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뭇가지를 던졌더니 단물이 되었다는 너무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쓴물이 단물이 되는 사건은 마실 수 없는 물이 마실 수 있는 물이 되는 사건이에요. 바로 구원도 이런거에요.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구원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 홍해를 건너서 수르 광야로 들어갔어요. 광야를 지날 때는 때로는 음식보다 물이 더 중요합니다. 늘 물을 어디서 얻느냐는 죽고 사는 문제예요.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물을 발견했어요. 마라라는 지역의 이름이 가진 뜻처럼 쓴 곳입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마라 같은 곳이에요. 마라같은 어둡고 쓴 우리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밖에서 와야 합니다. 이게 구원의 본질적인 개념입니다. 내가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럼 신앙도 필요없지요.

성경은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인간의 엄청난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도움이 밖으로부터 와야 한다. 위로부터 와야 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겁니다. 쓴 물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근데 자꾸 인간한테 해결할려고 하니까 더 써지는 거죠.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을 때의 그 감격이 사흘 갔어요. 그리고는 목이 마르다고 불평이 다시 시작됐어요. 이 백성의 불평하는 버릇.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절대 바뀌지 않았어요. 나에게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면 늘 그 시각은 부정적인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게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광야길을 다녀도 절대로 고생길이 끝나지 않아요. 신앙은 관점을 바꾸는 일이에요. 우리의 환경을 바꾸는게 신앙이 아니에요. 그건 바뀔 수도 안바뀔 수도 있어요.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내가 바뀌어야 하고, 내 변화의 핵심은 문제를 바라보는 내 관점을 바꾸는 거에요.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것은 관점이 바뀌는 것을 뜻해요. 이게 오늘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샘과 눈은 똑같은 단어에요. 눈이 뭘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관심, 열정, 방향이 결정됩니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는 것, 부족한 것을 바라봐요. 사람들은 있는 것을 보지 않아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진 것을 족할 줄로 알라고 하시잖아요. 부족한 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이 땅에서는 늘 부족한 것에 시달리며 살게 되어 있어요. 늘 없는 것을 불평하다보면 우리 인생은 한순간에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 이들이 물을 보고 달려가서 마셨는데 물이 써요. 근데 물이 쓰니까 모세를 원망해요! 왜 모세를 원망해요?? 남을 탓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남을 탓해요.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남을 탓하는 시선을 거두어서 나를 바라보는 거에요. 신앙이란 문제를 늘 나에게서 찾는 습관이에요. 백성들은 다 습관처럼 모세를 탓하죠. 근데 모세는 "그럼 내가 잘못했냐?" 이렇게 따지지 않아요. 그는 또 여호와께 부르짖어요. 지도자는 백성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부모는 자녀를 탓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부모가 낳았으면 부모가 책임지는 거에요. 자녀의 문제는 부모가 책임져야 해요. 신앙도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신앙으로 넘어가는 거에요. 자녀를 탓할게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해요!! 늘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해요.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에요.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게서 담대함을 주세요, 지혜를 주세요. 문을 열어주세요. 모세의 눈에 한 나무가 들어온 거에요.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은 용기를 주세요. 눈을 열어서 바라보게 하세요. 그 나무가 지금 십자가가 되는 거에요. 쓴물을 단물로 바꾼 것처럼 세상의 쓴 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달게 하시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구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을 구하게 하시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물 하나 달게 만드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십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을 드러내신 겁니다. 써서 마실 수 없는 쓴 물에 나뭇가지 하나 던졌더니 단 물이 되었다. 치료되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기적입니다. 이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보여주심으로서 우리 인생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고, 광야에서 우리가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계시는 과정이에요. 인생의 문제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그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 본문 메시지가 주는 말씀입니다.

→ 쓴 물이 단물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구원받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겁니다. 물론 나가면 또 불평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계속 이끌고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하십니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 문제 해결의 답이 누구인지를 그들이 알게 되었고, 단 물을 마시고 엘림이라는 곳에 도달합니다.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거쳐서 엘림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가나안 땅을 미리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에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고서는 인생의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어요.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연합하고 부활과 함께 연합할 때 모두 엘림에 이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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