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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16:1-10 누구를 원망하는가

by jiroky 2021. 7. 12.

 

만나와 메추라기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오늘 우리는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불러내셨다면 그들을 굶겨 죽이실리도 없지요! 다 대책이 있으니까 불러내신 거죠. 하나님께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으면, 주님께서 계획하시고 생각하시는 목적지와 여정이 다 있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정의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을 따라 나서면 늘 여정, 일정, 과정 가운데 불만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났지만, 롯은 그러지 않았죠. 그는 아브라함을 따랐죠. 그러면서 그는 불만이 많아졌고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다가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되죠. 따라서 신앙의 길이란 각자가 주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교회를 따라간다? 목사를 따라간다? 이게 아닙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데도 왜 불만이 끊이지 않았을까요? 왜 인간은 원망하며 사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 먼저 이들은 홍해를 건너서 마라에 도착해서 쓴물이 단물이 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목마른 그들에게 마실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엘림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12샘과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어서 살기 좋은 땅이었어요. 거기 머물면 얼마나 좋아요? 그치만 거기가 목적지가 아니잖아요? 편하고 좋은 곳이 나타나면 여기서 초막 셋을 짓고 영원히 살고 싶다. 이것이 목적을 상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여러분 돈은 왜 법니까? 부자들을 보면 기껏 돈 많이 벌어봤자 쓰는게 초소화 요트 짓는 거에요. 돈을 버는 목적이 없는 사람은, 돈을 쓰는 방법을 보면 그 머릿속에 뭐가 들어쓴지 보인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야지 하나님이 주신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것은 내가 목적을 하나 정해 놓고 그 목적을 따라가는 게 아니에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 하나님이 동행하는 삶 그 자체가 목적인 거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쉼을 얻었으면 다시 최종 목적지를 향해서 당연히 떠나야지요.

→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이르렀어요. 지금 가나안 땅은 북쪽인데 남쪽으로 간 거에요. 그러니 갈등을 일으킬만하죠. 이번에는 밥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나봐요. 불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이 불평, 불만이 참 고약스러운게 급속히 확산된다는데 문제가 있어요.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대요. 이 말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말과 귀담아 듣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거에요. 자칫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남을 비난하고 험담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잘 들리고 공감이 되요. 칭찬하는 소리는 공감하기 어려워요. 욕이 더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죄인들끼리 모여있기 때문에 그래요.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런 자리가 불편해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요. 지금 온세상이 불만이 가득한 세상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한 거에요.

→ 자기들이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었대요. 벽돌 만드는 가마에 있었으면서 무슨 고기 가마 곁에 있었다는 거죠? 떡을 배불리 먹었었대요. 늘 모자라고 먹을게 없어서 허덕였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불만의 원천을 보면 과거가 왜곡됐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기억이 왜곡된다는 거에요. 과거의 고난의 시간이 행복했던 시간마냥 기억되는 거에요. 과거가 변색되어서 지금보다 좋았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거에요.

민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실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거 먹지 못했어요. 그들이 먹고 싶었던 리스트에요. 먹지 못했던 건데 먹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이런 어려움을 겪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리면 좋은 것이 와도 좋은 줄 모르고, 감사한 것이 와도 감사한 줄 모릅니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온갖 수모를 겪고 매를 맞았는데도 사도들은 기뻐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는 못가더라도 오해를 받고 시련을 겪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세요.

→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그게 우리 신앙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뭐 주세요, 뭐 주세요 할 수 있어요.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뭘 자꾸 달라고 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뭘 줄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인생,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할지 돌아보는 인생이 하나님께서 인도해가시고 원하시는 인생입니다.

→ 하나님은 그냥 주시면 되는데 왜 불평, 불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주고 싶지만 일부러 자식한테 안주는 부모가 있잖아요? 주고 싶지만 자식을 위해서 일부러 안주는 부모의 마음인 거에요. 이런 부모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으면 그 자녀는 부모의 소유 밖에는 관심이 없어요. 신앙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 안주시나?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안주시는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원하는거 다 주셨으면 우리는 이미 감옥에 있거나 이 세상에 없어요. 이것은 분명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준비하고 계세요.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데 아침에 가서 그것을 매일 거둬야 해요. 근데 여섯째 날만 갑절을 거두라고 하세요. 평일 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면 상해서 못먹게 되요. 하나님의 훈련하시는 방법이 참 재미있어요. 이 훈련의 목적은 뭐에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거에요. 너무 많은 양식을 구하지도 말고, 하루 하루 감사할 1일분 양식을 거두라고요. 토요일날은 이틀 분을 거둬서 주일날 안식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시는 거에요. 하나님은 신기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결정하고 고백하면 일용할 하루 양식을 주시고 안식일을 지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심니다. 노예의 삶에서 하나님 백성의 자유민의 삶으로 바꾸시는 거에요. 안식일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날이에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일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내리고 아침에는 만나가 내려서 일단 먹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데, 7절을 보면 하나님이 마치 이들의 원망을 듣고 거기에 응답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원망해야 할 신앙의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가 투정하면 그 투정에 부모는 기꺼이 투자합니다. 의식주에 대한 불평에 하나님은 비교적 너그러우십니다.

→ 모세는 그러나 원망하는 버릇에 대해서는 단호합니다. 원망은 나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원망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원망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죄인의 고질병압니다. 선악과를 같이 먹었지만 아담은 하나님이 지어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지 내 탓이 아니라고 해요. 하와는 당신이 지으신 뱀 때문에 내가 먹었지 내 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면은 사탄은 변명을 안해요. 그래서 영적 존재가 무섭다는 겁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길 바랍니다. 원망은 결국 그 칼끝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특징이 비방이요, 비난이요, 원망입니다. 인간의 원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다. 우리는 이 말을 정말로 두렵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 원망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 뒤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다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심을 기뻐하십니다. 그 영광을 위해 입술을 조심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남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비방하는 입술이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하는 입술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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