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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19:16-25 죽지 않도록 알리다

by jiroky 2021. 7. 19.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25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서 시내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이죠. 그럼 구원의 목적은 뭡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삶으로 바뀌는 선물을 주시기 위함이지요. 약속하셨던 대로 백성들과 시내산에 왔고, 예배를 받으시기 전에 관계 회복이라는 절차를 허락하십니다. 왜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까? 만남 이전에 만남을 충족시키는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도 대충대충 만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사전에 알아보기도 하고, 무슨 옷을 입고갈지 준비하고...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만남을 위한 이런 정성스런 준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그런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 조건을 위해 우리를 정결케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밟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모세는 어떻게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지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시내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계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약속대로 이틀간 정결케 해서, 사흘째 만나는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은 시청각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레, 번개, 빽빽한 구름, 나팔 소리. 우리로서는 상상이 잘 안가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구름, 연기, 불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전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날 때도 시내산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잖아요?

→ 그리고 나팔 소리가 들렸대요. 마지막 심판이 임할 때도 나팔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팔 소리가 들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우리와 소통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 하나님을 마중하기 위해서 모세가 백성을 거느라고 진에서 나오는데 온 산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실 때 그 땅에 유황비가 떨어질 때도 이렇게 연기가 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 온 산이 크게 진동했다고 해요. 누구는 지진이 났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나중에 하나님이 이 땅에 임재하실 때 온 세상이 진동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시 114: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하나님께서 산들을 흔들을 때 마치 어린 양이 뛰노는 것처럼 흔드셨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건물이 하나 흔들려도 사람들이 크게 놀라는데 산 전체가 흔들린다고 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처하겠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앞에 임재하신다고 하면 두려워서 어쩔줄 모를 거에요. 이 장면을 계속 떠올려 보면은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생각하게 합니다.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 산꼭대기에 강림하셔서 모세를 그곳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갔는데 다시 내려가서 백성들한테 가까이오지 말라고 전하래요. 왜 이런 이야기를 전하게 하셨을까요? 경계를 자꾸 넘어오려고 하니까 이러시는 거죠.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은 가까이 오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가까이 올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오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가까이해서는 안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지금 이런 상태로 가까이 가다가는 죽을까 한다는 겁니다. 모세로서도 답답한 일이겠죠?

→ 그러나 나중에 이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는 지 우리는 잘 압니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시 모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그리고 본인께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죠. 그래서 그 분 이후로 우리는 마음껏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살렘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찢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전까지는 가까이 오지말라. 가까이 오면 죽는다 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전하는 것은 하나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정결케 되면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지 않으면 가까이 나아와서는 안된다라는 것을 전하는 겁니다.

→ 구원과 심판이라는 동일한 이 한 사건을 놓고 우리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가까이 나아오면 살 길이 있고, 가까이 나아오면 죽을 길이 있다는 거에요. 가까이 나아가도 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언제든지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 품에 달려가서 안길 수 있지만, 그게 안되는 사람은 나아가는 그 경계선이 곧 죽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다 죽는다 하지만 결국 그 경계선을 넘어가는 일이에요. 넘어가도 사는 삶이 있고, 넘어가면 죽는 삶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신앙이란 생사의 갈림길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안믿는 것도 결국은 죽고 사는 문제에요. 그래서 우리가 목숨걸고 전하는 거에요. 죽고 사는 문제를 무겁게 여겨야 우리 신앙도 무거워지고 진지해지는 거에요. 나는 얼마나 신앙을 죽고 사는 문제로 여기고 있나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제사장들에게도 성결히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능력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해서 부르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만남이 가능하고, 그 만남의 전제가 성결이란 말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거란 말입니다. 결혼식에서도 신부의 첫번째 조건은 성결함이기 때문에 그 성결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입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덧입는다는 것도 성결이 조건이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날마다 깨끗함을 입고 나아가기 위해서 예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내 이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의 의인은 없나니 단 한사람도 없는데 누가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나아간다, 예수님의 권세로만 살 수 있다 이게 머리속에 박혀 있어야지요.

→ 몸을 성결히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칠까 하노라. '치다'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지만, 그 구원을 가볍게 여긴다면 치십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나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 자체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치 태양과 같아요. 태양은 멀리 보면 밝히 빛을 비춰 주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뜨거운 온도에 타버리기 때문에 절대 가까이 갈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적절한 거리가 우리를 지켜주는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25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 모세는 놓쳤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넘어오는 무리가 있음을 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내려가서 넘어오지 말라고 전하라고 하셨어요. 모세는 '아이~ 그들이 잘 할겁니다'라고 말하니 '가서 전해라!'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결국 모세는 다시 내려가서 백성들에게 알리는 거죠. 처음에는 약간 거절하는 것 같지만 결국 다시 그 명령에 순종하는 모세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단 한번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하루종일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날마나 어떻게,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지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성결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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