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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20:1-17 열 가지 계명의 본질

by jiroky 2021. 7. 20.

 

십계명 (신5:1-21)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십계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맺으시는 언약의 핵심 내용이지요. 원래는 열가지 말씀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후에 초대 교부의 한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십계명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을 뿐이지 성경 자체에 나오는 말은 아니에요. 열가지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열가지 말씀을 대게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인 관계, 그리고 수평적인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어떤 이는 4:6으로 어떤 이는 5:5로 나누어서 다섯째 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부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계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다섯째 계명까지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4:6의 관점으로 볼건데요, 어찌됐든 계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파악한다면 충분한 것이죠.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마치 서문에 해당하는 것 같지만, 출애굽기 1장부터 19장까지를 한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너희를 종의 신분에서 인도하여 내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이란 무엇입니까?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준 것이지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묶여있던 것에서 풀려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인간의 힘으로 풀어질 수 없는 것을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유함을 경험하는 거에요. 우리가 진리 아닌 것에서 묶여 살다가 진리가 오면 자유함을 경험하는 거란 말입니다. 묶인 것에서 풀려남을 받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 마땅한 자유민의 삶을 10가지 계명으로 정리해준 것이지요. 이것을 지키고 사는게 진정한 자유라는 거에요. 지금부터 그걸 한 번 보겠습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첫번째는 나 앞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은 무슨 신이겠어요? 쉽게 말해서 귀신들이죠. 또 다른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 앞에 다른 종교를 두지 말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라는 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테두리를 씌워서 종교 비즈니스를 할지도 모르고 종교 산업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것,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 생명이 왜 종교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신들에게 꼭 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어차피 결국 우상숭배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적인 비극은 다른데 있는게 아니에요.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적 기준과 가치를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 그걸 버리고 자유해졌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 빠졌어요? 온갖 중독에 시달리죠. 그게 다 다른 신들을 앞에 두고 사는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세요. 다른 신들은 다 종교에요. 결국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유일성은 곧 절대성이에요. 아버지가 둘이면 뭐- 행복합니까? 아버지는 한 분이어야죠.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거에요. 왜 형상을 만듭니까? 자기를 위해서 형상을 만드는 거에요.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의 대체품, 하나님의 모조품을 만들어 놓고 절하고 숭배하면서 하나님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패널티가 갑니다. 근데 삼사 대로 그리 길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 즉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응답하시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택한다는 것은 영원을 택하는 거에요. 잠시를 택하는 게 아닙니다.

→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두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는게 뭐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영이신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믿고 살아가는데 왜 불안해지냐는 거죠. 그건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먼저 걱정하고, 나를 먼저 생각해서 그래요.

결론은 하나님을 제일 먼저 두면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 문제는 내가 그 앞에 있으니까 내가 먼저 걱정이 되는 거죠. 하나님을 먼저 두는 것, 최우선시 두는 것, 그 다음에 이웃을 두번째로 두라는 거죠. 그럼 나는? 젤 마지막이죠 뭐-. 그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고,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입니다. 근데 죄인들은 그 순서를 역순으로 만들어 버려요. 내가 제일 먼저고, 이웃은 그 다음이고 하나님은 뭐 있어도 좋고, 없으면 더 좋고. 이게 세상 아니에요?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세요. 왜 하나님을 함부로 들먹일까요? 하나님이라는 분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으니까 함부로 들먹이는 거죠.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면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된단 말입니다. 새 옷을 입으면 뭐 하나 묻을까 조심을 하는데, 내 존재의 근원에 관한 것들을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신성모독을 안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 이름을 함부로 흔들어서 땅에 떨어지게 하지 말라는 거죠.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은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하라는 거에요. 자유민과 종을 구분하는 기준은 뭐에요? 종은 단 하루라도 쉴 수가 없어요.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대기해야지요. 반면 자유민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쉼이 있는 삶입니다. 안식일은 쉼을 연습시키는 거에요. 그럼 쉼이란 뭐냐? 내 모든 일을 생각하고 내 모든 일에 묶여 있는 삶이 아니라 그 일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되새겨 보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닮는 날입니다. 안식일이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 형상 점검과 하나님 형상 회복의 날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날 하루라도 내가 나 자신에 몰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멈춤으로서 내 존재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날을 가지는 거죠. 그게 복된 이유란 말이에요.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란 말입니다. 안식일에 쉴 줄 아는 사람이 복된 거죠. 직장에 안나가는 날인 안식일이 아닙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멈춰서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이것을 묵상하고 점검하는 하루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지으시고 자녀를 낳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부모를 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함부로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탐욕. 이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에 나타나는 부수적인 열매들이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바로 잡혀있는 사람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인 삶도 바로 잡혀 있어서 이런 것들을 안하게 된단 말이에요. 이걸 하고 있나 안하고 있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해요.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하는 법은 내가 이웃의 것을 욕심내고 있나 없나로 알 수 있다는 거죠. 나중에 주님께서 오셔서 이것을 다시 해석하시고 기준을 한차례 올리셔서 행동으로 하지 않아도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행동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셨어요. 생각 그 자체도 행동과 동일시 여기신거죠. 따라서 행동이 우리를 구원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거에요. 구원받는 사람들은 이런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생각조차도 품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마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계명을 잘 지키나 못 지키나에 묶여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삶을 주님께서 풀어주시면서, 결국 단 두 가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압축되는 계명이라고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면 당연히 지켜지는 계명이다는 거죠.

→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게 모든 것의 귀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단순 명료한 계명입니까? 결국 서로 사랑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이 계명이 묶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접속되어 있기만 하면 줄줄이 열매를 맺는 경험을 하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죠.

→ 이 계명은 결국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생명을 존중하는 클라이맥스고 본질입니다. 그리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어떤 결과가 나는지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자신들이 뭐에 묶였는지도 모르고 귀신들려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거에요.

이 기준을 명심하고 지키면 살아가는데 가장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 단순한 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절망을 경험하는 지금의 세상을 만들게 된 거에요. 이런 삶의 즐거움을 겪어냄으로 이 세상에 잔잔한 충격을 주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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