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옷니엘 사사의 시작부터 마지막 사사 삼손까지... 그 차이가 매우 큽니다. 옷니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쟁에 나가는 것을 보지만, 삼손은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뜻대로 나아갑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뭔가를 얻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마치 삼손의 신앙과 같은 겁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여받은 사람조차도 자기를 향해 있는 것을 볼 때,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조건이나 능력도 없는 삼손을 택하실까요? 동일하게 아무 조건이나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오셔서 택하신 것입니다.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 하나님을 아는 사람끼리 모였어요. 하나님을 아는 유다인 3천명이에요. 그런데 동족이 동족인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에 넘기러 가는 거에요. 유다인 삼천에 블레셋 천이에요. 숫자로 봐서도 맞서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숫자지요. 근데 그들은 블레셋에 대항해 싸우지 않아요. 되려 블레셋에 잘보이려고 하죠. 여러분 이게 지금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에요.
→ 세상이 우리를 향해 소리 질러요. 세상은 우리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소리를 지른다고요. 이런 문제 앞에 우린 고민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내 염려를 향한 고민을 멈추고 그 염려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염려라는 것만 아시기 바랍니다.
삼손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요. 근데 하나님을 찾지를 않아요. 우리 모습 같지 않나요? 믿는다고 하지만, 양다리 걸친 유대인처럼 믿고 있다고요. 어떻하면 블레셋에 잘보일까 고민해요. 어떻하면 세상에 잘보일까 고민해요.
→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신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방벽이 되는 하나님이 임하시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우리가 뭔가 은사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 같지만 절대로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거에요.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 삼손의 모습은 은혜받고 나서도 옛날 모습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방금 죽은 나귀의 턱뼈를 집어듭니다. 방금 죽었으니까 뭐가 있어요? 피가 흐르겠죠? 삼손은 자꾸 시체를 만집니다. 죽음을 만집니다. 이 말은 삼손의 상태가 죽은 것과 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도 내 방식대로 사역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 삼손의 노래는 자기 노래입니다. 자기자랑이에요. 교회가 하나님 자랑을 하는게 아니라 세상 자랑하고 사는 모습이랑 동일합니다. 나의 민낯을 발견하면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나의 간절함을 하나님께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블레셋을 몰아내고 (하나님 말씀에 설득되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 턱뼈로 턱뼈로 쳐서 천명의 뼈다귀를 쌓은 산의 이름까지 짓습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사람이 변합니다. 근데 변해도 아~주 조금 변합니다. 삼손은 항상 자신만만하고 교만해요.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절대 못봐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말은 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는 내가 한 걸로 으슥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바 없죠.
→ 삼손이 목마를 때 하나님을 찾았어요. 게다가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까지 해요. "내가 했다"라고 하는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죠? 근데 '베푸셨사오나'에요. "내가 하나님 일 하다가 목말라 죽으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하는 거에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십니다. 마른 샘물에 물을 터뜨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터져 나오는 그 순간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16:23-31 이번만 힘을 주소서 (0) | 2021.12.01 |
---|---|
사사기 16:1-22 다시 자라난 머리털 (0) | 2021.12.01 |
사사기 15:1-13 대적에게 넘겨주다 (0) | 2021.11.30 |
사사기 14:1-20 갈등을 만드는 까닭 (0) | 2021.11.30 |
사사기 13:15-25 영이 그를 움직이다 (0) | 2021.11.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