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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일1말씀] 데살로니가전서1:1-10 본받을 신앙 공동체

by jiroky 2020. 11. 2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바울 서신서 중, 첫번째 편지가 데살로니가서이다. 그는 빌립보를 거쳐서 들어간 데살로니가에서 소동이 일어나 베뢰아로 피신을 가지만 거기까지 그 소동이 따라오자 결국 고린도로 이동하지만, 데살로니가를 그리워하면서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는 재림의 소망을 가장 잘 정리한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모든 서신서는 당시의 편지 양식에 따르고 있다. 발신자는 바울과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바울인데 실라와 디모데의 이름을 같이 넣은 것에서 그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다.

바울은 바나바랑 같이 사역하다가 마음이 엇갈려서 실라와 동행한다. 실라도 바울과 같은 로마 시민권자였다. 디모데에 관해서는 공적으론 형제, 사적으로는 아들같이 그를 대했다. 바울은 이 둘을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다.

⇒ 교회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다. 주 안에 있어야 공동체다. 이 서신서의 가장 큰 특징은 사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다른 서신서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럼 왜 여기는 없을까? 데살로니가에서는 사도권에 대한 시비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아도 됐다. 그만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 대한 신뢰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 항상 하나님게 감사하며 기도할 때: 우리 신앙의 기본자세가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 감사의 조건은 뭘까?

롬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개인적인 일로 우리는 감사할 일이 많죠? 그러나 신앙인의 감사는 믿음의 길을 같이 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 있다.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다. 헌금을 잘 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사의 조건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길을 올곳게 따라가지 않은데 서로 친하기만 하면 그게 무슨 유익이 있겠겠나?

⇒ 그리고 또 감사할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자, 하나 하나 보고 가자.

믿음의 역사 : 이것은 믿음의 행위, 믿음의 행동을 의미한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에는 행위가 따른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랑의 수고 : 사랑은 수고로 나타난다. 사랑으로 인해 겪는 수고는 크다. 그 수고를 감당할만한 사랑.

소망의 인내 : 어떤 소망이든 인내를 가지게 한다. 인내라는 것 자체가 누구보다 낮아진다는 뜻이다. 우리의 신앙은 인내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교회에 믿음, 사랑, 소망이 드러나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골로새서1:4-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여기도 나혼다. 믿음, 소망, 사랑. 근데 요한 계시록에서는,

요한계시록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행위, 인내, 수고만 나온다. 믿음, 소망, 사랑이 빠졌지만,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기록은 결국은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데살로니가는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나?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없었다면 쉽게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형제들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란 어떤 존잰가? 택하심을 받은 존재, 부르심을 받은 존재. 교회는 그럼 어디서 부터 시작했나? 최초의 시작은 바로 광야교회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는 순간부터 시작된 광야교회가 그것이다.

신명기4:37-38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38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교회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한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큰 권능으로 불러내신 것, 이게 교회의 뿌리다.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불러내신 것이다. 우리는 이 부름받음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 사도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진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자체가 물론 복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능력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가? 그런데 실생활에서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은 정작 믿음이 아니다. 그냥 생각이고 망상이고 잠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환란 속에서도 성령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주를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환란은 그냥 단순히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 고난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이 환란은 복음 때문에 겪는 환란을 말한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음은 창세전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신앙을 살아내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기쁨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행17:1-15에 왜 사도 바울이 왜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나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막고 딴지를 걸은 것은 바로 동족들이었다. 같은 유대인들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교회가 좀 발전하고 부흥하려고 하면 그것을 시기하고 막고 딴지를 거는 것은 누군가? 바로 같은 기독교인인 성도거나 이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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