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줬다가 당시에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협박을 받고 쫓기듯 피신했다. 그만큼 데살로니가에 머물렀던 시간이 짧아 아쉬움도 있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그리움이 컸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이상하게도 소동이 일어났다. 왜 그랬을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가장 반발했던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하나님을 믿는자들이 되려 크게 반발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그들은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향한 모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를 만났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예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어디서든 거친 반응을 보인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었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역시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입장에 서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항상 핍박과 고난이 있었다. 그는 교회가 세워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전도여행을 다녔던 각 지방의 교회에 서신서를 보냈고, 지금 우리가 신약 13권을 통해 그 서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그는 고난과 능욕을 당했지만, 지진이 나면서 간수가 회심하고 그 덕에 풀려났다. 그는 많은 싸움 가운데 복음을 전했다. 복음은 절대로 편안한 가운데 전해지지 않는다. 항상 갈등과 충돌이 있다. 혹시 당신은 평안한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니까 아무일이 없이 평안한 거다. 일단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관계를 끊는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려움은 반드시 겪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베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영광에 들어가고 싶은가?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아주 짧은 고난이다.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 당시에는 사람이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바울은 이 복음이 그런 것들처럼 속임수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복음 자체가 생명이고 사랑이고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뭐 간증이니 뭐니 그런거 듣는거 좋아하는데... 사실은 그런 것보다 복음 자체가 가진 능력만한게 없다. 이해가 안되도 계속해서 성경 말씀을 읽다보면 때가 될 때 반드시 드러나게 되있다. 그래서 복음은 되려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 신앙은 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창조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이는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걸 인정할 때, 보이는 것의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세상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그래서 세상과 충돌이 있는 것이다.
세상이 발전, 진보했다고? 세상은 되려 더럽고 추악해졌지 진보하지 않았다. 발전이라기 보다 되려 복잡해졌을 뿐이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가 가는 길은 사람을 구원하는 길이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길이 아니다.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기 위해 아첨하거나 탐심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아첨으로 말해서는 절대 안된다. 아첨은 내가 편하고자 나를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러나 복음은 당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섭리에 의한 건데... 결국 당신을 위한건데... 어떻게 아첨할 수 있겠나?
탐심도 마찬가지다. 욕심의 그릇에 복음을 담아 전하면 상대는 되려 상처만 받는다.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로 탐심의 그릇에 성령을 담아주시지 않는다. 찬양하며 울고 불고 하는 사람들을 봤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
마케팅을 하면 사람을 불러 모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능력은 없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지는 못했지만, 핍박 속에서도 인생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 귀중한 동역자들을 얻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 "마땅히 사도로서 내 몫을 주장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헬라의 괴변론자들처럼 돈을 받고 뭘 하지는 않았다. 내가 강력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유모가 아이 키우듯이 부드럽게 전했으며,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전했다."
유모가 아이키우듯 유순하게 부드러운 그런 목회자를 찾아 교회를 떠나니지 말아라. 주님이 바로 그런 분이신데, 주님을 보고 교회를 가면 되지. 왜 그런 목사를 찾으려 하는가?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 바울은 복음이 마치 헬라 사람들이 전하는 하나의 철학이나 지성으로 전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복음은 영원이니까 복음은 그 자체가 사랑이니까, 빛이니까. 그걸 어떻게 돈받고 하나? 솔직히 바울은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도 있었지만 복음의 가치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행20: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뭘 바라지 않았다. 그는 텐트 메이커로 일하면서 자기뿐만이 아니라 동행들이 쓰는 것도 충당했다. 분명한 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충분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만, 주는 것의 기쁨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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