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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일1말씀] 데살로니가전서 2:10-20 믿음이 증언하는 것

by jiroky 2020. 11. 24.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복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가 이렇게 기를 쓰고 전하는가? 복음이 무엇이길래 복음 전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애를 태우나?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바로 이런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믿음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믿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만사가 형통하고 병도 낫고 이런 것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사람과의 관계도 올바른 관계, 바른 관계로 들어간다. 사람을 뭔가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게 아니라 사람을 그 존재 자체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 왜 바울이 실라랑 디모데를 데리고 전혀 환영받지도 못할 땅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관계를 맺을 때는 1장에서 말한 어머니의 성품으로, 그리고 지금 2장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성품으로 가르치고 일으켜 세우는 존재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 절에서 등장하는 '경계'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뜻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먼저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울의 목적이었다. 그럼 왜?

⇒ 바로 나한테 유리하고, 나한테 합당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에서 이것을 놓치게 되면,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이익을 얻는 삶을 사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결국 세상과 다를바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것이다. 신앙을 내 소원이나 성취하는 나부랭이 정도로 여기지 말아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 이 모든 변화가 어떻게 해서 일어날 수 있나? 그건 바로 하나님의 말과 사람의 말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은 자기 생각이다, 자기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이다, 능력이다, 생명이다. 성경이 인간의 말로 되어 있고 인간의 언어로 되어 있지만, 이 말을 하나님의 말로 받아들일 때 그 능력이 나타난다. 그 하나님의 말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자! 똑같이 와서 같은 설교를 듣는데, 누구는 '아! 하나님이 나한테 말씀하시는구나'로 받아들이면 그건 믿음이 되는 거고, '응~ 오늘 설교 좀 잘하네.. 말 좀 잘하네..' 이렇게 받아들이면 그냥 인간의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예배 오면 뭐하나? 다리 발품만 좀 팔았을 뿐이지, 그건 믿음이 아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도 바울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 고난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헬라에 있는 이 교회도 동족들에 의해 고난을 받는게 전혀 이상할게 없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를 왕창 받았는가? 이제 당연히 받을 고난을 준비 해라. 베드로는 어떻게 말하고 있나?

벧전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난 받는것은 당연한 하나님의 뜻이다! 악을 행해도 어차피 고난 받을거 이왕이면 선을 행하고 고난 받는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하고 있다.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 "내가 몸은 비록 떠나 있지만, 마음이 떠난게 아니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다. 너희한테 가고 싶었지만, 사탄이 그 길을 막았다."

우리는 영적 존재에 무지하기 때문에 사탄에게 이용 당해도 당하는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우리에게 오만가지 악한 생각을 뿌리는 것이 마귀다. 신앙이란 이런 가라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눅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예수님이 직접 사탄을 언급하신 부분이다. 영적 존재가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신약은 우리의 영적 세계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읽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보여지는 너희의 변화된 모습이 우리의 기쁨이고, 우리의 영광이다."

자녀가 바르게 잘 사는 것이 부모의 기쁨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가 바른 관계, 흠 없는 관계로 사는 것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시고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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