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니엘서

[1일1말씀] 다니엘서1:1-9 뜻을 먼저 확정하라

by jiroky 2020. 12. 12.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바벨론 포로기에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것이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로 포로로 그 땅에 끌려갔지만, 결국 총리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냈는지 듣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야 하는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통해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어떻게 굳건히 지켜나갈 것인지 길을 찾는 것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 예레미야서의 시대와 다니엘서는 1년 차이가 난다. 예레미야서는 유대인의 역사관으로 4년이라고 말하고 있고, 다니엘서는 바벨론의 역사관으로 3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것이 마치 바벨론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이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2절의 표현처럼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신 것이 보일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관점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이 있다.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를 깨달아가게 될 것이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 바벨론의 왕이지만 나라의 통치를 위해 느브갓네살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완벽한 통치를 위해 그 땅의 지도층 인사들을 거의 끌고와 쓸만한 사람을 분별해내고 있다. 건강하고 외모가 멋지고 지식을 갖추고 있는 자들을 뽑는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의 기준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혹은 자녀들을 이 세상의 기준에 들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전전긍긍하고 있나? 그래서 그 기준에 들어가면?? 결국은 당신을, 혹은 당신의 자녀를 느브갓네살이 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뽑지 않으신다. 따라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가진 이 재능을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 3년간 그들을 교육시키고 잘 키워서 정성을 기울인 다음, 바벨론을 위해 쓰임받는 것이다. 바벨론을 위해 사육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는데... 누구를 위해 사육당하고 있는 것인가? 한 번 조용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 이름이란 인간의 정체성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이들의 히브리식 이름을 바벨론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이란 간단하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거냐? 사탄의 졸개로 살거냐? 사탄의 졸개로 살면서 졸개로 사는지 아는가? 그들은 모른다. 겉보기에 잘 살고 잘 먹으니 전전긍등하고 사탄의 기준에 들려고 노력한다. 이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뜻을 좀 더 살펴보자.

다니엘 (하나님이 재판관) → 벨드사살 (벨이여 생명을 지켜주소서 * 벨: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두게의 별명 )

하나냐 (하나님의 자비하심) → 사드락 (아쿠의 명령 * 아쿠: 달의 신)

미사엘 (하나님과 같은 분이 누구냐) →메삭 (누가 아쿠신인가)

아사랴 (하나님이 도우셨다) → 아벳느고(느고의 종 * 느고: 바벨론의 주신 마르드게의 아들)

 

세상이 가르치는 학문의 목적은 세상사람을 만드는데 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공부를 그렇게 죽도록 시키는데 결국 세상학문은 진화론을 심어주는 게 목표다. 그렇다고 공부를 가르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공부 잘하면 그저 좋아하는데, 그 학문의 밑에 뭐가 깔려있는지 알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다. 당시 왕족들이 먹는 음식은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다 지낸 후에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이방 신상들에게 드려졌던 재물이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럼 바벨론의 학문인데 공부는 왜 했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앙을 지키는 기준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다니엘은 옷은 이방인의 옷을 입지만 정신은 그대로 가지고 지켜나가겠다고 하는 기준을 삼은 것이다. 이방 신상에 드려진 재물은 먹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 어떤 형태든지 하나님께 드린 내 뜻을 그 분은 귀하게 여기시고 그것을 받으신다. 내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정하면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는 상황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라. 뇌물 절대 안받겠습니다 하면 그런 상황만 주신다. 즉 믿을을 위한 뜻을 먼저 확실히 정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주신다.

⇒ 다니엘이 이방 신상에게 제사지낸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받으셨고, 환관장을 움직여서 다니엘이 그리 하도록 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일하시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일하시나? 아니다.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 분은 언제 어디서든 일하시는 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을 결단하고 뜻을 확정하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