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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6:2-13 왜 말씀만 하시는가

by jiroky 2021. 6. 18.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출애굽은 결코 쉽거나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바로가 허락할리가 없죠.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4000년간 신앙을 지키는 출발점이 된겁니다. 그들이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의지와 은혜로 이룬 것 그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인간 스스로 구원해보라고 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독이는 모습을 봅니다. 모세는 순종할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과연 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모세의 모습에서 우리를 봅니다. 불순종하고자하는 인간의 의지를 어떻게 꺾어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또 그런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이 구원의 섭리를 어떻게 계속 해나가실 수 있냐는 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변치 않으셨고, 변치 않으세요. 인간이 변할 뿐이죠.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세요. 출애굽기 3장에서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고 우리는 읽었습니다. 그 뜻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근데 이번에도 이름을 계속 반복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여기서부터 신앙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지만, 하나님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 분은 '스스로 있는자' 곧 시간과 공간의 시작입니다. 이 말은 그 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해요! 따라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초월하는 것이 구원의 궁극적인 사건이에요.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구원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고 계시는 거에요.

 우리가 부족감을 느끼고 결핍을 느끼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우리 힘으로 이것들을 초월하고 벗어날 수는 없어요.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이것들을 초월할 수 있는 거지요. 하나님이 왜 말씀으로 존재하시냐? 왜 말씀이 전부라 하느냐?에 대한 답이 여기 있습니다. 스스로 있을 수 있는 자존자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간의 연결고리는 말씀 밖에 없다는 거죠.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나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만이 현실과 미래를 연결하는 힘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믿은 만큼 미래를 현실화해서 사는 존재가 됩니다. 믿음만큼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믿는 만큼 하나님과 소통하고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여호화"에 담겨져 있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스스로 있는 자이고 우리는 스스로 있을 수 없는 자죠. 이를 연결하기 위해서 말씀을 읽는 겁니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짐승과 구별되고 짐승보다 나아요. 그러나 이 말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오염되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된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면 인간은 교만해지거나 죄악으로 빠진다고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그래서 많아진 거에요. 우리가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어떤 종교든 남도 돕고 봉사하고 다 해요. 그러나 구원에 관한 본질, 핵심은 이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시작되는 거에요. 수많은 신들은 이거랑 상관없이 존재해요. 인간이 만들면 신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치 않기 때문에 구별되는 거에요.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언약을 주셨고 그 언약을 '기억하노라'라고 말씀하세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한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내가 까먹었다가 기억났다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기억하노라'는 이제 실현할 때가 되었다.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요. 결국 하나님의 언약은 붙들면 언젠가 실현이 된단 말이에요. 그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의 실현을 위해 지금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거 아니에요?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계속해서 여호와라고 이름을 말씀하시네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핵심을 세 단어로 말씀하세요. '빼낸다', '건진다', '속량한다'. 이게 구원받는 실체에요.

 무거운 짐 밑에서 우리를 빼내는 것. 무거운 부담감과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려 사는 우리를 빼내주시는 거에요.

 그 다음, 왜 안식을 그리 강요하듯이 하십니까? 무거운 노역에서 쉬게 하는 것,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노역에서 건져주시는 거에요. 쉬는 날 하나없이 주말에도 일하시는 분 있습니까? 아! 내가 아직 노예근성에서 못 벗어났구나 생각하시면 되요. 워커홀릭이야말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에요. 워커홀릭은 남도 워커홀릭으로 만드는 능력 밖에는 없어요. 사람은 쉴 줄 아는데 능력이 있어요. 근데 예수님은 왜 안식일에 일하셨어요?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과 진정한 쉼을 주시기 위해서 그 분은 일하시는 거에요. 앞을 못 보는 자에게 눈을 뜨게 해주심으로 참된 안식을 주셨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심으로 참된 안식을 주신 거에요. 그게 건저내는 거에요.

 속량하다는 하나님이 내 혈족으로서 값을 지불하고 너를 되찾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종된 삶에서 자유인이 되게 해주기 위해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꺼내주신다. 이게 구속하신다는 뜻이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말의 뜻입니다. 이게 신앙의 이유에요. 우아한 노예가 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큰 집에 사는 노예, 큰 차를 굴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신분의 변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변화를 위해서 신앙을 갖는 거에요. 이걸 위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시작하셨다는 겁니다.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모세가 하나님의 말을 전하면 듣냐고요? 안듣죠. 그래서 반복적으로 말하는 거에요. 리더란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막힌 귀를 뚫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에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아요. 그대로에요. 그 분은 우리가 불평한다고 들어주고 하지 않으세요. 인간의 변덕에 부응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서 변덕스러운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거에요. 따라서 우리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다 답답한 사람들이에요. 바로도 모세도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도... 이런 답답한 존재들을 데리고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거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그 분은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그 분께서 그 분의 계획대로 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시는 거죠. 그게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거에요.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모세가 또 투정을 부려요. 이게 모세와 동일한 우리 신앙의 모습이에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그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안 이루어 집니까? 그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 때문이죠. 왜 이렇게 고난을 많이 겪습니까? 인간의 죄악 때문이죠. 이런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방식대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는 것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방안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하는 본질적인 해결 방법에서부터 하나님은 일을 풀어가십니다. 따라서 인생의 어떤 문제가 얽히더라도 구원의 첫단추부터 잘 꿰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말고, 어떤 구원이 내게 임했는지, 성경 읽는다고 안심하지 마시고 내가 말씀대로 제대로 사는  게 단 한 절이라도 있는지.. 그걸 확인하지 않으면 그냥 취미 생활로 종교 하나 가지고 있는 거 뿐이에요.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해방, 진정한 구원이 있냔말이죠??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문짝 다 떨어진 냉장고 같은 존재가 우리에요. 돈을 주고 가져가 달라고 해도 안가져 갈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그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원 주신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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