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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7:14-25 왜 심판이 임하는가

by jiroky 2021. 6. 19.

 

첫째 재앙 : 물이 피가 되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이제 애굽땅에 10가지 재앙이 시작됩니다. 왜 이런 재앙이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재앙을 부르는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유없이 무슨 일을 겪지는 않지요.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을 잠잠히 돌아보면 나로 인해 생기는 고난이 있어요. 그리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있어요. 하나님의 크신 구속사의 역사를 진행해 나가는 다음 단계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시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고난을 분석하기 보다는 이 고난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재앙이 시작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를 섬기는 백성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섬기던 사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섬기던 것들의 대상이 바뀌는 거에요. 이 때, '섬기다'라는 단어는 '일하다', '예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일하고 사는 게 사실 섬기는 겁니다. 섬기고 사는 건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일과 삶과 예배는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어떤 종교적 특성을 가지고 '예배'라고 한정하다 보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만 예배라고 오해하는데, 어원적으로 보면 우리 삶 전체가 예배의 다른 형태입니다.

따라서 주일 예배는 온 마음을 다해 드리면서 일은 대충하는 사람은 예배를 드릴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시는 것은 바로를 경배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삶으로 바꾸시겠다는 겁니다. 근데 430년간 바로를 섬겨왔는데 그게 쉽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누군지 알아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겠지요. 이스라엘 백성 또한 하나님이 누군지 알아야 하지만, 내보내는 애굽 백성들도 하나님을 알아야 내보낼 수 있단 말이에요.

 재앙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라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건들이이에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겪은 이유가 뭐에요?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바꾸어 가시는지를 주목해야 해요. 근데 나는 안 바뀌고 하나님을 바꾸려고 하면 아무리 교회 다니고 성경 읽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평생 살다가 끝나는 거에요.

우상숭배하는 이유는 뭐에요? 내가 바뀌기 싫어서 우상숭배하는 거에요. 내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요? 내 소원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탄에게 절 한번 하는게 뭐 큰일 날 일인가? 이게 오늘날의 사고 방식이잖아요! 윤리도 없고 그저 돈만 벌 수 있다면 뭐든지 하는 삶이잖아요.

 왜 돈이 근본이 되는 사회를 만듭니까?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우상 더미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돈이 우리를 지배하는 질서로부터 우리를 끌어내는 것 이게 21세기식 구원이에요. 부의 근원도, 행복의 근원도, 번성의 근원도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구원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질서를 어떻게 이겨요? 그러나 비록 이 속에 살지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거기에 지배받지 않는 삶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단 말입니다. 애굽이 섬기던 바알 우상만 생각하면 안돼죠.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고 그분이 내 삶을 이끌어가시고 그 분을 섬기면서 사는 삶이 진짜 구원받은 삶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있으면 세끼 먹고, 없으면 한끼 먹으면 되죠.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하는 삶을 살게 될뿐이에요.

애굽 안에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나와서 섬기라고 하세요. 바로는 이 말을 안듣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지요. 바로는 사탄적 질서의 통로일 뿐입니다. 우리는 내가 화가 나서 분노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분노라는 낚시바늘을 던져놓고 줄을 뒤에서 흔드는 사탄에게 우리가 낚인 거에요. 예수를 믿고도 우리가 화가 났다고 생각해요! 사탄이 던진 분노 낚시에 낚인 것 뿐이에요. 내가 뭐에 낚였는지를 모르는데, 그거 덥석덥석 물고 그랬다간 뭐- 인생 그냥 다 가는 거죠.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하셨는데 안내보내는 이유는 뭐에요? 여호와를 모르기 때문이죠. "여호와가 누군데 내 것을 내놓으라고 하냐" 이거에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거다" 하세요. 우리가 잘 살 때는 몰라요. 근데 병에 걸려서 죽음에 임박하면 느끼지요. 내가 그동안 먹고 살았던게 내 돈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의 젖줄이에요. 그들은 자기들이 나일강 때문에 먹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일강을 신격화해요. 매일 아침 나일강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요. 오늘 하나님께서 그 나일강을 치시는 거에요. 피로 만들어 버리면 못 먹잖아요? 여기서 사건이 하나 떠오르지 않으세요? 바로가 어린 아기들을 다 나일강에 던지게 해서 죽였잖아요? 하나님은 그 사건을 기억하시고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사35:3-4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이사야를 통해서 갚아주시는 하나님, 신원하시는 하나님, 보복하시는 하나님을 강력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것은 내게 달린 것이다'라고 말해주시니까 우리는 원수에 대해 분노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는 일만 하면, 원수의 일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정리하십니다.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면 하나님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악한 영적 존재들도 흉내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따라해요. 독재정권에 싸웠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도 똑같이 독재정치를 합니다. 못된 시어머니에게서 배우면 며느리가 나중에 못된 시어머니밖에 될 일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한원을 갚지 말라고 하시는 거에요. 원한을 갚을 '분노'라는 에너지가 나를 끌어가기 시작하면 배워야할 것은 정작 못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만 배운단 말이에요.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끊어내지 않으면 정말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에요.

 


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갔는데 나일강 일에는 관심도 안 가졌대요. 누구 땜에 지금 이 일이 난겁니까? 한 지도자의 고집 때문에 백성 전체가 고통 속에 빠진 거 아니에요? 한 지도자가 고집을 부리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근데 지금 이 상황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어요. 어쩌면 나 한 사람의 고집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사람은 없냐 말이에요? 내 고집으로 내 가족이 고생하고, 사장의 고집으로 전 직원이 고생하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리더의 중요한 자질은 바로 고집을 버리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되려 두려워하고 존경해요! 그게 다 불안해서 그러는 거에요. 성령충만하면 고집부릴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이 고집스러운 모습이에요. 무거워서 분별력이 흐려진 거에요. 상황이 변하는데도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거에요.

날마다 우리를 쳐서 깨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살아있는 존재는 반응하는 존재에요. 예민하게 상황이 어디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는 것이고, 어제 방식으로 오늘을 살지 않도록 하는 거죠. 바로는 관심도 없대요. 이게 완악한 권력의 민낯인거죠.

결국 주민들은 나일강 주변을 파서 물을 찾죠. 이런 일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더 고집스러워 지려고 이 길을 가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날마다 나를 쳐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주의 뜻에 복종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나를 내어드려서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겁니다.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내가 변할 길은 없어요. 내가 말씀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거 말고는 다른 삶의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됩니다. 따라서 고생 안하고 바뀌나, 고생하고 바뀌나 그게 지혜와 우매의 차이 아니겠어요? 오늘도 말씀이 나를 관통하고 찔러 쪼개서 내가 변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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