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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9:27-35 왕과 신하가 꼭 같다

by jiroky 2021. 6. 23.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우리는 바로쯤 되면 대단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때는 더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바로의 행동을 보면 전형적인 권력의 한계, 어리석음을 봅니다. 실수는 한 번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같은 실수를 두 번하면 어때요?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세번째에도 실수를 하면 저사람 머리가 나쁜가? 이런 생각을 하지요. 죄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거짓말하는 것은 머리가 좋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커서도 거짓말한다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에요. 바로의 행동이 이 어리석은 행동의 전형이지요.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일곱번째 재앙은 바로도 견디기 힘들었던 재앙이었습니다. 돌만한 우박이 내리고, 밖에 있는 것들은 다 죽고 농작물도 다 버리게 되지요. 바로는 그래서 사람을 보냅니다. 아론까지 데려오라고 한 것을 보니 마음이 상당히 급했나봐요. 근데 그 둘을 불러놓고 하는 말을 좀 보세요. 27절을 보면 회개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과연 이게 본심일까요?

이번은 내가 범죄했대요. 그럼 지금까지 여섯가지 재앙은 내가 범죄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회개는 조건이 없습니다. 회개는 내 인생 전체가 죄라는 것을 자각하는 거에요. 내가 평생 한 거라곤 죄 지은것 밖에 없다. 이게 회개의 시작힙니다. 회개는 머리끝부터 발끝가지 죄인임을 깨닫는 거에요. 회개는 완전히 뒤집어 엎는 거에요. 180도 방향을 트는 거에요. 회개랑 후회는 다릅니다! 우리가 후회는 여러가지를 합니다. 후회되는 일도 있고, 후회하지 않는 일도 있지요? 그러나 인생 전체는 회개하지 않고는 하난님께 다가갈 수 없어요. 회개는 전인격적인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회개는 통째로 못쓰게 된 인간을 갈아끼우는 일이에요. 그래서 거듭난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회개는 거듭나는 출발점입니다. '이번은 내가 잘못했다'가 아닙니다.

나와 내 백성이 범죄하였고 악하다? 회개는 나 자신에 관한 일이지 남까지 끌고 들어가서는 안돼요. '나도 잘못했지만 저 사람도 잘못했습니다'는 회개가 아닙니다. 바로의 마음 가운데 다급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태도지 전형적인 회개와는 거리가 멈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도 그럴 수 있어요. 한번도 제대로 회개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죠. 물이 담긴 컵에 잉크가 한 방울만 떨어져도 버려야지요? 두 방울은 들어가면 안되고 한 방울 들어가면 괜찮습니까? 한 방울이 들어가도 이미 오염된 물이잖아요. 회개란 내 인생 전체를 쓸모없다라고 폐기처분하는 각오가 없이는 절대 회개가 안되요. 그래서 머리가 좋을 수록 회개가 안되요. 내가 쌓아온 것을 패기처분 할려니 아깝거든요. 경험이 많을 수록, 가진게 많을 수록 , 나이가 많을 수록 회개는 어려워요. 그래서 회개는 내 의지로 하는게 아닙니다. 회개의 영이 부어져야 비로소 참된 회개가 일어납니다. 내 의지로 하는 건 수양의 일종이에요.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고 우선 이렇게 약속하고 보는 거에요. 전형적인 정치인의 약속이지요. 이 표현대로라면 이제 끝난 거 아닙니까? 근데 그게 끝난게 아닙니다. 이게 우리 사는 모습과 같아요.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모세도 점점 통창력이 깊어졌어요. "이 재난을 가져다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왜 이런 재난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지 아십니까? 온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게하려고 하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위대한 일은 지식이 높아지고, 돈 좀 버는 것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위대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알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어요? 모세는 나이 80에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리는 것 밖에는 가치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모두가 하나님을 알리는데 혼신을 다하면, 세상은 바뀌게 되어 있어요. 세상이 혼미한 까닭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죠.

시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게 우리 신앙의 고백이죠. 땅에 있는 것들과 땅에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만 하나님의 사람인가요? 아니에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에요? 어쩌면 감옥에 있는 자들이 더 의로운 자들이고, 진짜 악한 자들은 밖에서 살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땅도 하나님의 것이요. 그 땅에 있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거 아닙니까? 그들을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 보게되면 분노에서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는 상태지만,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인데...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것을 기억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런 마음으로 보면 분노가 풀려요.

 우리 안에 화평이 없으면 어딜가나 분란을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다'하는 거에요. 그래서 선교지에 가는 거에요. 거기서 가족이 죽어도 거기를 또 가는 거에요. 왜갑니까? 거기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가는 거죠.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은 우리 속을 다 보고 계신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바로의 속을 모르겠습니까? 영에 감동된 사람은 속이 보인단 말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군요! 이 말을 듣고 바로가 찔리기나 했을까요?

 


31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왜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이 구절로 봐서 우박이 1-2월에 온 걸로 추정 가능해요. 보리와 삼은 싹이 나고 꽃이 폈는데 우박을 맞아서 상했지만, 아직 말과 쌀보리는 4~5월에 열매가 맺으니까 곧 열매 맺지 않느냐? 그럼 다시 먹고 살수 있지 않냐? 이거에요.

 먹고 살 수 있는 계책이 있으면 절대 두 손들지 않아요. 숨겨놓은 수가 있으면 전심으로 회개가 안되요.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발가벗기듯 우리를 데려가시는 거죠.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것은 우리가 의지할 바가 하나도 없어야 하나님께 고백하며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데리고 가시는 거에요. 진심과 전심을 다할 것을 요구하시는 거죠.

 


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비가 그치고 우박이 그치니까 바로가 원래대로 돌아가요. 사람은 절대 안변해요. 변했다 싶으면 그 자리로 다시 가 있었어요. 미숙하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거에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미숙하다는 증거고 어리다는 증거에요. 늘 거짓말 하거나 속이는 사람의 특징은 멀리 계산하지 않고, 계산하는 시간이 짧아서 그래요. 머리가 나빠서 그래요. 머리가 좋아서 죄짓는 거 절대로 아니에요. 진짜 현명한 것은 죄 짓는게 얼마나 큰 손실인지 깨닫는 겁니다. 깨닫고 죄를 안짓는 게 진짜 현명한 거죠. 괴로운 일을 안하면 될텐데 그 괴로운 일을 반복하면서 또 그 괴로움을 달래려고 술을 먹고 약을 하고 하는 거에요.

 바로가 모세를 만난 후에 하루도 편할 날이 있습니까? 없어요. 재앙 때문만도 아니에요. 임기응변으로 술사들 불러서 자기를 과시해야 하고, 당장 닥치는 위기에만 급급해할 뿐이지요. 우리가 멀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코 앞에 일에만 쫓겨사는 삶을 살아요. 신앙도 잘못하면 두려움 때문에 회개한 척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회개란 지,정,의 내 인격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참회개입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찔리는 것 때문에 회개가 일어나요.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면 비로소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 기쁨은 세상의 조건과 상황에 휘둘리는 기쁨이 아니에요. 그런 기쁨이 차고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호주머니가 비었어도 기쁨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3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다시 굳어졌습니다. 근데 이미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던 겁니다.

고후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져서 사형선고까지 받는 상황까지 갑니다. 그 때 바울이 깨달은 것은 더이상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 삶,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입니다. 아마 모세는 조금씩 깨달았을 거에요. 회개는 나를 의지하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바뀌는 거에요. 나를 의지하지 않는데 나를 내세울 게 있습니까? 다툴 게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겁니다. 오늘도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매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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