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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

[1일1말씀] 출애굽기 10:21-29 흑암이 세상을 덮다

by jiroky 2021. 6. 23.

 

아홉째 재앙 : 흑암이 땅에 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아홉번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입니다. 짙은 어둠.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빛이 사라지는 어둠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고 하심으로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따라서 창조 이전의 상태를 창세기 1장에서는 혼돈, 공허, 흑암 가운데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빅뱅이론에서 우주를 찾지만, 그럼 빅뱅 이전은 뭐냐는 거죠? 빛은 단순히 태양이나 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서 발광한는 것을 말합니다. 빛은 모든 무질서를 거둬내고 새로운 질서를 이 땅 가운데 새생명과 시작하는 길이고, 흑암이 이 땅가운데 있으라고 선포한 것은 창조의 질서를 역행한 것이지요. 심판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짙은 어둠. 앞을 분별할 수 없는 흑암이 있게 하라. 애굽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바로 자신이 태양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태양 자체를 가려버림으로서 그들의 우상숭배 자체를 무너뜨리는 조치를 하신 거에요. 사흘간 짙은 어둠 속에 헤매게 됩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 열가지 재앙이 결국 마지막 심판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에 반복되는 일곱 재앙들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대충 그려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둠이라는 본질이 창조 이전의 본질이라는 거, 구원 이전의 본질이라는거, 죄인의 본질이라는 거. 그게 어둠이에요.

사5: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암 5: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날은 어둠의 날이지 빛의 날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것이 심판의 그날의 그림입니다.

습 1:14-15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이렇게 심판의 날을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체 구속사를 보면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놓는 것을 구원의 그림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자들은 어둠 속을 헤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구원 받은 경험을 이야기한 것을 가만히 보면 그들이 받은 구원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받는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행 26: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게 충격적이에요. 바울을 어디서 구원했다고 하세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불러냈다고 말하세요. 이스라엘은 유대교의 본산지 아닙니까? 이방인들이란 유대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본산지를 말해요. 짙은 어둠이란 인간이 종교화 시켜놓은 그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종교를 전하는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 종교라고 하는 것에서 우리를 불러내서 생명의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구원의 본질임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도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여기고, 그저 종교인의 하나로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보니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인이 되버린 거지요. 어떻게 기독교인이 종교인입니까?? 우리는 생명의 사람들이요, 구원받은 사람들이에요!! 짙은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옮겨 놓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이 말의 뜻을 정확히 모른다면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됩니다. 십자가조차, 그리스도조차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불러내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부르셨대요. 기독교를 종교로 만든 거대한 세력, 거대한 음모를 우리가 놓치기 때문에 모든 다른 종교인들처럼 기도하게 된거에요. 주기도문대로만 살아도 우리는 종교적 속성에 빠지지 않습니다. 정말 날마다 말씀을 먹고 말씀 가운데 걷기로 결단하지 않으면 결국 종교인의 하나로 살 뿐이에요. 모든 종교는 두려움의 산업이요, 죄의 산업이요, 죽음의 산업이에요. 그걸 다 끊어놓은게 구원인데, 왜 사망과 죽음의 권세에 또 붙들려 있냐고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는 것 이것이 구원의 밑그림이란 말입니다. 모든 구원은 출애굽이요!! 노예에서 해방되는 거에요. 뭐 다른 종교 나부랭이로 만들어서 무슨 능력이 있겠어요? 뭘 믿는지도 모르고 뭘 구원받았는지도 모르면 그렇게 살게 되는 거에요.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이게 바로의 실상이에요. 고작해봐야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유로 협상하는 존재 밖에는 안되요. 달라는 것을 더 적게 주는 건 장사꾼이나 하는 거고, 리더쉽이란 달라는 것보다 더 주는 것이 리더쉽이에요. 근데 보세요! 바로는 쪼잔하게 모세랑 앉아서 애들 두고 가라, 아니 그냥 델고가! 소랑 양을 두고 가라. 이렇게 마지막까지 소유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는 진정한 리더쉽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목자는 다 삯꾼 목자라고 하신거에요. 진짜 목자는 딱 한 분 밖에 없어요.

 아홉가지 재앙을 만나도 포기할 수 없는 소유, 내 것. 이게 정치적 리더쉽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고 정치적 소망을 두지 말라는 거에요. 그들은 되려 우리가 긍율히 여겨야할 존재들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살까?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지, 뭘 가지고 고민합니까?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모세가 칼자루를 쥐었어요. 협상 오래하면 칼자루가 바뀝니다. 협상 전략중의 하나에요. 주도권이 바뀐 거에요. 왜 바뀔까요? 모세가 안바뀌니까요. 모세는 당연히 바뀔 수가 없죠!!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왔다 갔다 안한단 말이에요. 세상에서도 원칙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 못이깁니다.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내밀지 말라고 해요. 그러나 여러분! 다시 보지 않으리라 한 사람은 꼭 다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순교의 자리로 데리로 가기도 해요.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자리로도 데려가십니다. 모세를 보세요. 아홉가지 재앙까지 가면서 왜 바로가 모세를 못죽이나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드디어 죽여버린다고 합니다. 아니 지금 죽이면 안되요?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안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일을 하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이 모세를 쓰신다는 것을 알았고, 그 어떤 신보다 권능의 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이지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협박만 할 뿐이지 하나님의 사람은 제 맘대로 죽이지 못해요. 제 맘대로 살지도 못하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동행할 것인가? 늘 하나님의 뜻에 묶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 삼아서 일하실 것이고, 필요한 곳에 반드시 저와 여러분을 두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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